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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Aug 29. 2018

[백인보⑦] 떨어지는 사람

낙법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중          



이마트 1층에서 철장에 갇혀 팔리는 십자매, 형제수산 수족관에서 오래 굶은 동료들이 파먹어 뼈를 허옇게 드러낸 채 물 한 가운데 멈춰서서 천천히 뻐끔거리던 광어, 같은 노선을 매일 왕복하는 마을버스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연약한 것들이 쉽게 파괴당하는 세계의 복판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슬펐고 자주 슬펐다.      



호랑이를 무서워하는 아이는 호랑이가 앞에 있을 때만 두렵지만 귀신을 무서워하는 아이는 꿈에서도 두렵다. 실체 없이 마음이 그려낸 것은 그것을 그려낸 마음으로부터 떼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내게는 슬픔이 실체 없이 마음에 붙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폭력의 세계에서 슬퍼하는 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문학뿐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은 슬픔과 고통으로 쓰는 것인데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은 슬픔에 설탕을 덧칠해서 오래 물고 있게 했다. 오래 슬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쉬이 상한다. 나는 건강하고 싶었다. 자꾸만 나를 떨어뜨리는 세상에서 떨어져도 괜찮고 싶었다. 떨어지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다음 생에는 꼭 낙법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이왕 태어난 김에 이번 생에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낙법은 생각만큼 드라마틱한 기술이 아니었다. 낙법은 이런 것이다. 보통 떨어지면 추락을 멈추려고 손을 뻗는데, 이럴 경우 손이 부러지기 십상이므로 이런 자연스러운 방어반응을 버리고, 곧 다가올 충격을 분산할 수 있는 자세를 몸에 익힌다. 몸에 익히는 과정은 간단하다. 어떤 자세에서는 아프고 어떤 자세에서는 아프지 않은지를 관찰하며 여러 번 일부러 떨어지면 된다.



낙법을 배움으로써 내가 안 것은 어떻게 떨어져도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머리가 깨지거나 손이 부러지지 않도록,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만 아프도록 충격을 분산하는 것이었다. 슬프면 하던 과제를 멈추고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맥주를 마시러 가던 스무살의 내가 지금은 우울하더라도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된 것도 일종의 낙법인 셈이다.     



나는 낙법을 ‘쳤다’는 말이 좋다. ‘낙법을 쳤다’는 말은 떨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중력의 일이지만, 어떻게 떨어지느냐는 나의 일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지난 겨울 맥주를 잔뜩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새벽 세 시, 빙판에서 미끄러졌지만 측방낙법을 친 덕에 다치지 않았다. 유난히 펄펄 끓었던 올 여름, 험한 돌산에서 엎어질 때 엉덩이를 높게 들며 전방낙법을 치며 떨어졌고 안 다쳤다.



아니다. 사실 나는 제대로 낙법을 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낙법을 쳤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동안 나는 조금 아파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떨어지면서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더이상 슬픔이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좋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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