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의 삶 읽기
몸은 기록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한 앵클부츠가 기어이 굽이 다 닳았다. 사거리 정류장엔 언젠가부터 거기에 늘 있는 구두수선집이 있고 나는 언젠가부터 늘 거기서 구두를 고친다.
늘 반말을 하는 수선집 할아버지는 어떤 신발을 가져가도 맨손으로 구두창을 덥석 집는다. 그 장면은 내게 늘 어떤 놀라움이다. 세상에 내 신발창을 맨손으로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니.
운동 가는 길에 맡겼던 구두를 찾으러 갔다. 할아버지는 화장실에 가셨는지 자리를 비우셨다. 한참을 기다리니 꽃노점 맞은 편 빨간불 신호등을 비척대며 걸어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누룩 냄새 같은 술냄새와 얼큰하게 붉은 얼굴이었다. '신발 찾으러 왔는데요. 케이크 봉지에 담아 온 거요.'하니 할아버지는 내게 신발을 꺼내 보여주셨다.
신발은 굽도 깨끗이 갈려있었을 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닦여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하고 약한 탄성을 내뱉었다. 구두를 건네주시는 손은 셀로판지처럼 구겨진 주름살이 가득했는데 구두는 참빗으로 빗겨 처음 유치원 보내는 아이처럼 반질반질했던 것이다. 약간 숭고한 느낌마저 들었다. 손이 주름져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구두들이 반질잔질해졌을까. 할아버지가 "예뻐?"하시기에 "네" 했다. 언제나 약간 노려보는 듯한 눈초리였던 할아버지가 처음 웃었다.
값을 치렀다. 육천 원이었다. 할아버지가 "비싸게 받는 거 아냐."하시기에 "비싸긴요."했다. 평소에 할아버지의 노동이 얼마나 자주 평가절하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돌아서려는데 "니 신발이야?"하는 물음이 들려왔다. "네 제 껀데요." "무슨 발이 그렇게 커. 신발에 비해서 찾으러 온 사람이 작아서 니 꺼 아닌 줄 알았지." 내가 할아버지의 손이나 수공을 보고 그의 삶을 생각했듯이 그 역시 신발을 보고 그 신발을 신는 사람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 사소한 질문이 어쩐지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