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er stays there so long
나만 알고싶은 책을 읽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거 읽었어? 어땠어? 를 물어보고 싶은 충동에 폰을 들고 부릉부릉 고민하다 그만두길 여러번.
역시 나만 알고 싶어서 아직까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책을 안다면 말을 걸어줘! 같은 마음에 카톡 프로필명을 책의 제목으로 5년만에 적어봤는데(사실 얼마전에 어떻게 바꾸는지 알게 되었다!) 곧 지워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이걸 읽은 사람이 있다면 반가워서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것 같다.
작년에 교보문고에서 즉흥적으로 사온 몇 안되는 것으로, 표지와 제목만으로도 고른 것은 요 근래에는 참 드문 일이다. 대부분 사전에 사야지 적어놓았던 것들 외 즉흥적으로 두 권만 골랐는데 두권 모두 성공적이라 기분이 좋다.
초반부는 조용하고 차분해서 한장 한장 읽어나가기 조심스러웠다. 이틀동안 하루에 다섯쪽도 채 안되게 읽다가 어느날 깨닫기를 흡입력이 아직은 없지만 내가 곧 이것을 먹어치우듯 끝낼 거란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천천히 읽고 싶었다. 한문장 한문장에 집중하는 데서 오는 간만의 독서가, 이야기를 읽어나갈 때 오는 특유의 설렘이 즐거웠다.
소설이라면 유독 게걸스럽고 빠르게 먹어치우는 쪽의 독자인 나는 얼마 지나지않아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을 실패했다. 집어든지 3일째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 챕터를 남겨두고 조금은 마음이 슬퍼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다시 내려놓았다. 덜 슬플 때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못참고 그날 밤 마지막 장을 덮으며 탄식했다. 침대옆 낮은 서가-얼마전 물을 엎질러 고장나기 전까진 맥북이 늘 자리하던 그 자리-에 대신 두고 밤마다 랜덤한 페이지의 랜덤한 문장을 읽기 위해 만지작거렸다.
원제도 좋지만-화산의뿌리근처-정도인듯 하지만 번역된 제목도 만만찮게 좋다. 최근에 생긴 버릇은 옮긴이의 말을 조심히 읽는 것인데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그 때 있었지만 사라진 것들, 누군가의 기억 속 말고는 자취를 살필 수 없는 것들, 그렇다면 그것들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닌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된 제목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이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중년의 나이에 책으로 12년도에 등단?해서 일본내 화제였다고 한다. 현재는 세 권 정도가 한국에 출판되어 있는 듯 하다. 제목은
가라앉는 프란시스,
우아한듯 우아하지않는.
읽으면서 메모장에 읽는 날마다 이렇게 적었다. 대부분 같은 얘기로 책을 읽을 때 글을 쓰면 책의 문장을 다소 닮는 내가 보여 꽤 재밌다. ㅋㅋㅋ.
1. 이번에 읽고있는 소설 원제는 at the foot of volcano
번역서는 이유는 왠지 모르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출판사 비채) (나무 향이라도 맡을 수있을 것만 같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커버를 벗겨내니 킁킁 나무향이라도 맡고 싶어지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모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나도 놀라울 정도로 느리게 읽어나간다.
오늘은 단 여섯 페이지 정도를 읽었는데 그곳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 겨울 풍경 속을 덜커덩 덜커덩 달려서 저 아래 세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뭔가 저세상으로 향하는 것같아 쓸쓸하지.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게 빙글빙글 한가하게 돌아가는 것이 참 좋다고 아주 진지하게 말씀하시거든.
*와 여긴 읽어도 읽어도 참 좋다 !
2. 느리게 읽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하루에 열쪽 이상은 읽지 않는 편이 좋겠어 하고 읽고 있다.
아주 느린템포로 걸을 때만 보이는 게 있듯이
쫓기지 않을 때만 눈에 겨우 보이는 풍경들이 있듯이
아주 느리게 마음에 와닿는 사소한 문장들에 연필로 줄을 그어놓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읽은 분량 중에 연필로 줄그은 것들은 아래와 같다,
-차와 식후 디저트로 차가운 찹쌀 경단까지 얻어먹고 나서 보기에도 졸려 보이는 노미야 하루에에게 작별을 고했다. 기온도 많이 내려가 있었다. 벌레 소리가 솟아오르듯이 들렸다.
-본인은 삼가서 잠자코 있는 것하고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한테는 똑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