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mer Apr 13. 2019

30대엔 트라이링규어가 1

30대엔 트라이링규어가 1

되리라, 되고 싶다, 되기 힘들지도, 될수 있을까, 될 것이다


늦은 나이에 어학원에 입성했다. 보통 한국인의 경우 대학 편입하는 나이에 어학시험을 준비하기 때문에 평균 한국인에 비하면 확연히 늦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수강생의 나이는 10대부터 40대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 아빠의 결정으로 이민 온 가정의 틴에이저가 있는가 하면 가족과 함께 이주한 아이를 둘 둔 엄마도 있다.  

어학원에서는 특정 분야 내 학생 시절과는 조금 다른 국적의 친구들을 만난다. 대체로는 취준생들이긴 한데 와중에는 김나지움에 입학하기 위한 틴에이저와 대학교 입학을 일년 미루고 독일어를 배우고있는 친구, 몇 주 전부터 대학생을 속속 잡아가는 대통령의 독재를 피해 온 대학생도 있다.


우리나라엔 일자리가 없거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안돼, 우린 경제도 부패도 헬이야,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한 개인의 관점에서 EU존으로 인한(인한 건 아닌데) 무력감을 느낀다. 모두가 자체의 인력으로 나은 시스템을 위한 욕망으로 가득찬 아시아와는 다르다.


여성이 꽤 많은데 여성이 30퍼센트 이상인 그룹에 속해보는 것이 고교 졸업 이후 처음이라 초반에는 여성 중심의 분위기가 신기했다. 뭐랄까 간혹 베이킹해온 컵케잌을 나눠 먹는다든가 육아 고충에 대한 유머, 와중에 내 몬스터는 남편이라는 농담에 와르르 형성대는 공감대.. 신기하다.


쭈뼛거렸던 나만큼이나 쭈뼛거리는 남학생들을 보면 아주 그렇게 공감이 갈 수가 없어 한 마디라도 더 챙겨주게 되는데 물론 걔네는 뭐지 이 자기앞가림도 못하는 이 인간은? 정도의 눈으로 쳐다본다....


학생들은 영어가 되는 쪽도 있고 안되는 쪽도 있지만 관계없다. 사실 안되는 쪽이 새로 언어를 배우는 사이로는 더 낫다. 아이의 언어처럼 서로 말하는데 시작하는데 언어의 정도가 늘수록 커뮤니케이션의 대화 주제가 다양해지고 쉬는 시간이 시끄러워진다. Vehstest du? 가 여기저기서 난무하다.. 아라빅 네이티브 스피커가 많은지 화장실에는 아라빅으로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학교 건물에는 한자로 (여)가 여자화장실 앞에 붙어 있곤 했었다.


선생님은 4시간동안 끊임없이 아주 크고 명확하게 말한다. 처음에는 인간이 이렇게 주 5일 생활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놀라웠다. 이렇게 일주일을 들으니 귀가 트였다. 두 분의 선생님이 일주일을 나눠 오시는데 두분 다 아이가 둘 있는 엄마였다. 오전에는 외국인들에게 크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하고 집에가면 서너살에서 열살 남짓의 아이들에게 크고 명확한 소리로 말하는 듯 싶었다.


글자를 배우고 문장을 쓰게 되었을 때 그렇게 주변에 편지를 써댔던 볕이 잘 안 드는 베란다가 기억난다. 매미가 빽빽 울어재끼는 나무 그늘 아래 베란다에서 바둑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어 조금은 아이였던 내가 그리워진다) 산타 할아버지와 토끼, 누에, 부화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냉장고에서 꺼내온 날달걀을 수신인으로 편지를 그렇게나 많이 썼었다.


들리지 않아도 몇번이고 돌아가던 테이프도 기억난다. 나는 매번 중간고사 기말고사마다 범위 내의 문장들, 문제 지문과 듣기 대본까지 전부 외웠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쓰기와 읽기 위주라며 비판받지만 아이러니하게 나의 영어는 수천번 주어 동사 관계대명사에 밑줄긋고 세모 네모치던 문장들, 수능기출문제풀이집 안에 기초를 뒀다. 읽고 쓰는 걸 말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난 주입식이라 비판받는 한국 영어교육을 사실 재밌게 잘 받은 편이다. ㅋㅋ.


얼마전엔 친구와 같잖은 대화를 하다가 자꾸 richtig richtig 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한국어로 대화할때도 동조하는 의미의 맞아 맞아 그렇지 그렇지를 좀 자주 쓰고, 영어로도 right, right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것이 그대로 번역되어 richtig richtig 거리고 있었다. 되지도 않는 r 발음으로 침튀기며 맞아맞아 거리는 내 자신이 우습다.


새로운 언어를 쓰다보면 내가 많이 쓰는 단어도 발견하게 돤다. 익숙한 언어로는 쓰고 흘러가버리지만 모르는 언어는 말할 때마다 렉이 걸리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발견한 사용빈도수가 높은 단어들은 아래와 같다, 
mindestens
normaleweis
verschidenen


최대한 meistens를 막 배운참이라 대화하다 최소한이란 어절을 사용하고자 할 때마다 그 뭐였지 meistens의 반댓말이라고 말하곤 했다. 역시 버릇처럼 많이 쓰는 어절이었다, at least we could go, at least we can meet, at least I will try. 
같은반 친구가 쓰는 순간 내가 많이 쓰는 단어니 외워야한다 라고 생각했다. 걔도 normaleweis 진짜 많이 쓰더라 ㅋㅋ. 일반적으론 그런데 이건 안그래, 원래는 그랬는데 요샌 달라져. 예외와 변화를 말할 때 함께 쓰이는 어절이다.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조건적이며 예외적인가.
마지막은 자주 쓰는 단어라는 건 몰랐는데 새로운 언어로 대화하며 알게 되었다. Verschiedenen. 그렇지, 세상은 서로 모두 조금씩 다른 것들 뿐이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작가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