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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er Aug 24. 2019

8월 바람


한강의 n번째 소설집 바람이 분..다, 가라 를 다 읽었다. 잘 읽히는데 어딘가 어려워서 몇 쪽이 되지 않는데도 n주나 걸렸다. 말러가 나온다. (스포있음ㅋ) 




유신정권이 무너지기 몇 년 전, 음향 시스템이 가능한 어느 자제분의 과외방에서 세 사람이 말러를 듣는다. 밖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인다. 4악장을 끝으로 그들은 미시령으로 간다. (스포 끝ㅋ) 
음악을 듣는 귀는 아니지만 심포니란 절대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전 악장에 걸쳐 다양한 정서와 감정들이 각기 다른 악기의 입을 빌려 변덕을 있는 대로 부린 후 4악장의 끝을 향해 모두 함께 달려 간다. 이 변덕스러운 감정선을 고작 몇십분동안 따라잡을 만큼 섬세한 인간이 아니기에 졸음이 오는 것이 되려 다행이다. 지난 여름.오래된 지인과 초겨울에 벨린 필하모닉에서 만나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함께 말러를 보러가고 싶다.  


이북 리더기 역시 구매한 지 n주가 지났는데 할 수 있는 결제 방법이 없어서 읽고 싶은 혹은 읽어내야 하는 (욕심만 앞선) 영문과 랜덤한 숫자가 제목이 되는 pdf 파일만 저장되었다. 파일의 목록을 터치해 넘길 때마다 내가 이러려고 한국에서 생산된 이북 리더기를 샀나 싶은 자괴감(ㅋㅋ)이 든다.


길에서 만난 누군가는 아카데미아에 남을 것인가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라 말했다. 표현이 너무 좋아서 마시던 라떼를 놓칠 뻔 했다. 전업 연구자란 이 같은 마음으로 사는구나 감탄했지만 그의 고민(고뇐가)의 무게도 함께 느껴졌다.


n주 전에는 랜덤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자리가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질문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대답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 중에는 아주 작은 것부터 운영해보고 싶다는것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란 생각은 들지만-운영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인상깊었다), 깊어질수록 에너지를 뺏기는 관계 경계한다는 것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또 아이같은 질문들과 자신의 설명에 있어 책임을 다하는 사려깊은 대답들이 수놓은 자리였다.


내가 대답한 질문 역시 기억나지 않지만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했던 것 같다. 사실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정도는 있겠지만) 나에게, 바램인 측면이 더 많은 대답이었다.


일주일을 다소 낭비하다 금요일에는 볼더링을 갔고, 토요일에는 우연한 기회로 잔디를 깎아 볼 수 있었다. 잔디 깎는 기계는 꼭 청소기같이 생겼다. 하나도 깎인 것 같지 않은데 통을 열어보면 잔디가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 청소기와 비슷하다.


가뜩이나 경험치에 대해서 생각해 본 한 주였다. 몇 달간 이탈리안 아이스까페에서 접시닦이로 일한 나는 업소용 식기 세척기를 보면 반가움이 앞선다. 살아가며 개개인의 차이는 대부분 경험에서 비롯된 숙련된 정도의 차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 나사를 갈아끼우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것, 운전을 하고 주차를 하는 것, 빵을 굽는 것,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유익한 대화를 하는 것, 무익하나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하는 것, 익숙지 않은 어떤 것에도 어색해 뻘쭘해하거나 우물쭈물하거나 몸사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익숙지 않은 것을 나서서하는 것 자체가 기회이기 때문이고 그 기회의 축적이 숙련된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적극성이란 단순한데도 쉽지 않은 태도이다.


잔디를 깎고 집에 돌아오니 젊은 아빠가 연상이 됐다. 환갑이 코앞인 그는 요새 꼬리가 긴 고양이가 되었고, 그 고양이는 더 도전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어렸을 때의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칭찬해주기를 기다리는 나를, 그 선의가 기회로 돌아오길 바라는 나를 비판했다. 시스템에 받아들여질 때까지 준비하고 싶어하는 나, 완전한 시스템에 소속되기를 꿈꾸는 나, 흠결 하나 없이 존경하여 믿고 배울 수 있는 스승의 존재를 꿈꾸는 나에게 냉정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람의 선의와 관심을 기대하지 말라고, 의식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기회란 원래 좁은 문이라 주어지지 않으며 준비된 때란 없다고, 믿고 따를 스승같은 건 없을 테니 대신 타협하고 조정가능한 친구들과 후배들을 찾아보는 편이 나을 거라고. 
그리고 돌아와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먼저 쉽게 다가서려 들지 않는 딸래미를 위한 다정한(까진 아닌듯ㅋ ) 우려였지 실제로 칼을 품은 말이 아니었다. 소극적이고 세상에 낯가리는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내가 직접 그것들의 날을 갈아 마음에 박아넣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고? 모르겠다 ㅋ. 적어도 잔디를 깎아볼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않고 잔디를 깎는 기계를 보러가는 사람이 되었다.


낭비한 일주일 때문에 죄책감이 들어서 주말에 연구실에 가려고 열쇠를 받아놨는데 가지 않고 집에서 오래 잤다. 6년전 한국에서도 일요일 출근을 불사(사수?)하였던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군ㅋ. 요새는 쪽파와 대파에 살짝 빠져서 쪽파를 위한 계란 후라이, 라면 스프를 넣은 쪽파와 대파, 양파를 위한 전골 같은 것들을 만들어 먹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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