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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씨 Mar 20. 2019

11. 파트너

한쪽만 기대서는 척추측만증이 온다.

 남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확히는 내게 온 연락이 아니라, 남편이 본인 카톡으로 온 내용을 내게 보여주었다. 결혼한 지 약 1년 남짓된 이 친구는 부부 사이에 있었던 약간의(?) 의견 차이를 먼저 결혼한 선배 유부남에게 성토하고 있었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가질 계획은 있다 보니 임신, 육아에 대한 대화를 나눈 모양인데-

요점은 이랬다.

와이프의 임신 중(혹은 육아 중)에 남편의 사적이고 유희성이 있는 외출이나 외박이 불가능한 일인가. 친구의 와이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한 모양이었다. 그에 대하여 내 남편은 -나의 동의하에- 가능한 일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물론 이러한 일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전제를 분명히 달기는 했지만- 좀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괜히 남의 부부에게 불똥 던진 느낌이랄까.....

어찌 되었던 멀쩡한 성인남녀가 알아서 판단하겠거니 여긴 우리 부부는

(원래 친구 부부의 일에는 냉혹해야 한다, 길게 참견하면 좋지 못한 꼴이 나는 법이라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내 친구가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하하하)

마지막에 같은 결론으로 대화를 끝냈다.

이 부부, 신혼생활 끝났구나.


 실제로 나는 내 아들의 임신기간에도, 아이가 '누가 봐도 아기'인 시절에도 남편의 외출을 흔쾌히 넘어갔다. 뭐 그렇다고 내 남편이 매일 알코올을 외치며 집을 뛰쳐나갔다는 것은 또 아니고. 해봐야 일 년에 한두 번 있을 법한 일이었는 데다가 일 년에 딱 한번 1박 2일 자동차 모임쯤이야 전혀 불편함 없이 보내줄 수 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귀국했을 때도 당연하단 마음으로 강릉여행을 응원해주었다.

 빈도수가 주 단위로 잦았다면 단호하게 선을 그었겠지만 그건 날 두고 나가서가 아니다. 단순히 술로 인한 컨디션 난조를 방어하는 차원에서의 태클이다. 남편의 배 둘레는 본인이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의 법적 보호자로서 마냥 방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니까.

 또 동시에 나는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면 절대 안부를 묻지 않는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별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안 물어봐도, 내 남편은 자리 옮기면 어디로 옮겼다고 카톡. 안주가 바뀌면 안주 바뀌었다고 카톡. 친구들이 다 모이면 이런저런 놈들 만난다고 사진. 보고가 명확하다. 보고가 있어서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보고가 없어도 별로 상관은 없다. 이왕 나갔으면 노는데 집중해야지 뭘 보고해.(분명히 언급하는데, 연애 때도 결혼 후에도 나는 이러한 보고를 요구한 적이 없다)

 해 뜬 다음에 들어온다 해도 구박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이왕 오랜만에 나간 거 신나게 놀고, 택시비 아까우니 첫차 타고 들어가겠다는 그의 논리를 응원하는 입장이랄까..... 이왕 노는 거 무제한으로 놀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술 안 좋아하는 나도 통금이 안타까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왜 이해를 못하겠는가. 뭣보다 이 인간은 타고나기를 해독 기능이 워낙 좋은 간을 가지고 있어서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눕는 일이 없다. 좀 기분 좋게 알딸딸해졌다 해도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그저 카톡으로 하트 달린 이모티콘을 잔뜩 보내는 일 정도뿐이다. 술도 못 마시는데 밤새 마신다면 어떻게든 집에 붙여놔야 마땅하겠지만, 양주를 먹어도 멀쩡한 인간이니 말 다했지.

  그렇다고 여자를 밝혀서 여자가 있는 노래방이나 술집을 나다닐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고. 진실은 모르지만 모르니까 없는 일인 것이다. 대신 뭐든 들키면 바로 이혼이지만. 내 사전에 그러한 일은 절대 용서가 없다. 친아빠라도 안 보고 살 작정이다. 그래서 걱정을 안 한다.

 여하튼 이 모든 전제는, 술 먹고 짐승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일 년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는 것, 어디 가서 맞고 올 피지컬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내가 억울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것.


 진짜 사정을 잘 모르는 남자들이야 남편 이야기만 듣고서 형수님 맘 넓다, 제수씨 진짜 좋은 사람이다 뭐다 말들 하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약 그냥 남편을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애정이 없다던가 남편이 무서워서 찍소리 못하는 자기희생정신 투철한 여자의 이야기겠지. 근데 난 둘 다 아니다.

 부부는 가정이란 회사를 꾸려나가는 파트너다. 파트너의 정의는 넓고 많겠다만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업무 공유의 가능성에 있다. 내가 하는 일을 하지 못할 때 상대방이 기꺼이, 내 이상의 업무능력을 갖추고 바통 터치해줄 수 있는 자격. 내 남편에게는 그것이 있다.

 오래전 우리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결혼을 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들은 흔히 '생활력'이라고 부르는 경제적 능력을 경험하거나 갖추지 못했고 남편이 그러한 능력을 오롯이 감수하는 가정 형태가 기본었다. 때문에 그들은 육아와 살림의 무게를 홀로 감수했다. 나는 이러한 형태 자체만은 결코 여성인권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그냥 시대상에 맞는 포지션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개인의 성향이나 의지가 배제되었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글세, 그건 그 시대의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인 입장 아니었을까. 세상 모든 남자가 돈 벌어오는 일에 능했다면 살림과 육아에 경제력까지 요구당했던 어머니들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았겠지. 여기서 가부장제의 도덕성 상실과 각종 악습 등은 배제하자. 내 브런치는 여성인권 상향을 위한 곳이 아니니까.

 여하튼 그랬던 시대다 보니 우리의 어머니들은 남편의 '바깥일'로 인한 부재를 당연시(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라 그 속내가 진정 어떠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대의 어머니들을 기준으로 요즘 여성들의 심정을 평가한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르니까.

 이제는 어지간한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경험한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결혼 임신 육아로 인해 전업주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한때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던 우리는 필요하다면, 맘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 형태가 퇴사 전으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내 남편이 하고 있는 포지션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베이스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억울함은 거기서 시작한다. 나는 바통터치 가능한데, 너는- 가능해?


 여기서 자존감 상실과 우울, 고부갈등, 부부관계 악화 등으로 가졌던 능력을 상실한 여성 군은 별도로 치자. 그런 상태의 가정은 남편의 외출문제를 가지고 따질 등급이 아니다.


 내가 내 남편의 외출에 관대하다 못해 노터치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반대 입장이 되었을 때 내 남편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종의 이유로 지금 담당하고 있는 살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 남자는 그것이 가능하다. 육아는 공동의 책임이지만 어찌 되었던 남편이 일을 나가고 없으니 내가 더 많이 일임하고는 있다만- 그 또한 바통터치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다. 실제로 내 남편은 젖먹이는 것 빼고 다 가능한 사람이니까. 그의 생물학적 부족함은 또 다른 월등함으로 케어 되는 문제-근육량의 차이로 나보다 더 많이 안아줄 수 있다던가-로 충분히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억울하지가 않다. 내가 외출한다 해도 흔쾌히 보내줄 사람이고, 또 전혀 걱정이 들지 않게 가정과 아이를 지켜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라. 나는 상대방의 부제나 상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상대방은 나를 대신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그럴 생각이 없다면. 엄마 아빠 여자 남자 그런 구분 다 떼고 그냥 회사에서 내 파트너가 그런 상태라고 생각해보잔 이야기다. 그럼 얼마나 억울하고 꼴 보기 싫겠는가. 가정 또한 회사라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많은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동시에 내 남편이 흔쾌히 육아를 자신의 일처럼 분담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이 경제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내가 그 짐을 덜어낼 수 있다는 안도감을 기반하고 있지 않겠는가. 나 없으면 이 가정이 굶어 죽는다는 전제로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는 치열하다 못해 언젠가 치사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의 아버지상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반대로 여자 역시 자신이 살아온 치열한 인생을 대물림시키려는 치사한 시어머니가 되어 부부는 우리 시대의 잔혹한 기성 시대로 변모하고 만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촌극이란 말인가.

 나는 나 자신도 내 남편도 그런 촌극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지 않다. 부부가 각자의 일에 금을 긋고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 그 좁은 우물 입구만 바라보며 악을 쓰게 된다. 내 우물 입구만 보느냐고 내 반려의 악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부부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엄동설한, 최악의 겨울이라던 그때 어린 아들이 탄 유모차를 밀며 자격증을 따러 다녔다. 내 남편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네가 돈을 못 벌어와도, 네가 전업주부가 되어도 우리 가정은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운전 연수를 받았다. 네가 운전을 못해도, 기동성이 떨어져도 내가 너의 몫을 해줄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언제든 필요한 포지션, 원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고 지금의 이 모습은 그저 당면한 현실에서 가장 효과적인 위치를 지정했을 뿐이라고. 언제든 바뀌어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일단 내 생각에는- 꾀나 안정적인 분위기를 구축하며 살고 있다.

 누가 먼저 씨를 뿌렸는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내 남편은 이미 결혼 전부터 분유를 탈 줄 아는 남자였고, 나는 결혼 전부터 남편과 같은 직종의 일을 하던 여자니까. 우리가 뿌린 씨는 같이 기대어 자라는 나무가 되고 있으니 시작은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 부부는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비슷하게 자라야 한다. 그래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에는 예외상황이란 것이 발생한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로 일을 할 생각에 운전연수를 받았고, 내 몫으로 작은 소형차를 한대 마련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의 세컨드카는 남편이 타고 다닌다. 나는 여전히 전업주부고 운전능력이 늘지 않았다. 집은 빌라인데 차만 두 대가 되어 둘 다 남편이 출퇴근용으로 번갈아 끌고 다니고 있으니 외제차를 산 것도 아닌데 카푸어처럼 보인다. 대체 왜 일이 이지경이 되었느냐면-

 내가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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