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씨 Nov 18. 2018

10. 현모양처의 왕좌

이제는 누구도 꿈꾸지 않는 그것

<내 꿈은 엄마 같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입니다.>

대체 몇 년도 문장이냐 하겠냐면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까지도 현모양처란 그리 낯선 단어는 아니었다. 요즘애들은 무슨 뜻인지, 들어보기나 했는지 몰라도.

오랜만에 떠오른 이 단어가 너무나 생경하고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마 요즘 사회분위기가 한몫하고 있겠지. 사실 그리 나쁜 꿈은 아니다. 현모양처가 어디 쉽나.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 아니라 신분을 말해주는 단어라는 것이 문제일 뿐. 여하튼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그것을 꿈꾸지 않았다. 꿈=직업 인 세상에서 여아들은 더 이상 신분뿐인 인생을 꿈꾸지 않는다. 아, 물론 돈 많은 남자 등에 업혀 살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망은 적잖이 있겠다만- 그건 누가 봐도 현모양처는 아니니까.


남자아이들과 동등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뛰었고 탐폰의 이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여성의 직업군에 장벽이란 없음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세대였다. 여러모로 운동에는 가성비가 좋지 않던 가슴도 체육시간에 우리를 좌절케 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스포츠 브라가 있었으니까. 뭣보다 체육 성적이 대입에 차지하는 비율은 사실상 제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딸이 본인과는 다른 세상을 살기를 원했고 여자의 인생에 결혼이란 무덤과 다를 바 없음을 시사하는 발언도 서슴없이 뱉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글밥 좀 먹는다는 여자애들 치고 비혼을 부르짖지 않는 애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나도 그중 하나였고.

그러나 사회에 나와보니 정글 같은 직장에는 아직도 기성세대가 머리 꼭대기에 앉아 담배와 인스턴트커피로 찌린내가 나는 입을 털었고 그걸 이겨먹으려고 악을 쓰다 보면 어쩐지 싹수없는 여자가 되어있는, 어라 엄마가 해준 이야기랑 많이 다른데- 싶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억울하겠어. 학교 안에서는 이제 세상은 남녀가 공평하고 모두가 노력하면 업적을 이루는 데 있어 배척당하지 않으리라 가르치는데. 아, 물론 이건 남성들도 마찬가지. 여자들하고 아등바등 싸우다 거지 같은 군대를 털어내고 간신히 직장에 합격했더니 물통이나 갈고 앉아있고 여전히 전세금이라도 없으면 장가를 갈 주제가 못 되는 세상이라니. 요즘 여자들은 다르다며? 평등하다며? 말이 너무 다르잖아?

남자고 여자고 학교를 떠나니 배신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내 친구도 그랬고 내 친구의 친구도 그랬다. 우리는 진짜 현실에 던져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뛰었다. 내가 직접 물통을 갈았고 -내 근력은 의학적 소견으로 매우 형편없다. 물통 가는 건 힘이 아니라 요령이다. 물통 하나 드는데 대단한 힘은 필요 없음으로 별것도 아닌 일로 생색내는 꼴 보지 말고 직접 갈자- 책 수십 묶음 정도야 수레만 있으면 나도 옮길 수 있다. 어차피 남자들도 손이 두 개라 한 번에 두 묶음 밖에 못 나르지 않나. 문물이 발전하는데 왜 힘든 일을 남자를 시켜가며 아쉬운 소리를 들어줘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세상도 오로지 근육만 필요한 일 따위 별로 없을 텐데. 그렇게 남직원과 동등한 업무량을 해내고 월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자- 그게 나였다.

애인이 생기면 데이트 통장부터 만들었고 매해 돌아오는 이벤트마다 금액 상한을 정해 선물을 주고받았다. 나는 언제나 남자라는 생물 앞에서 당당했고 내 권리와 명예는 내가 수행하는 의무와 책임감에서 온다는 사상을 뇌와 심장에 박고 사는 여자였다. 결혼 자금도 돈 한 푼 제대로 모아둔 게 없던 남편을 쥐어짜 돈을 모으게 만든 후 결혼한 게 나였다. 굳이 신데렐라를 지정하자면 내가 아니라, 내 남편이 신데렐라였지. 암. 남자 기 세워준다고 내가 덜해왔다는 둥 그런 멍청한 소리 하는 여자도 아닐뿐더러, 내 남편 역시 기죽기 싫어서 헛소리 늘어놓는 남자가 아니다. 덩달아 우리 춘애 씨도 그런 사실을 쉬쉬하며 아들을 감싸는 막장 시어머니가 아니었고. 덕분에 우리의 결혼 준비는 주변인들에게 다소 파격이었지만 나는 도리어 좋았다. 여전히 나는 사람으로서 내 한몫을 제대로 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얻고 있었다.

그런데, 애가 생기니 세상이 바뀌었다.


사회적 약자가 된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다. 심지어 내가 길가다가 차에 치여서 장애를 입은 것도 아니요, 보증을 잘 못서서 길바닥에 나앉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선택으로 임신 하고 출산을 했을 뿐인데, 내 사회적 지위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더 열 받는 것은, 차라리 동정이라도 받으면 위안이 되었을 것을- 엄마란 워낙에 위대한 존재라서 쉽게 동정받지 않는다. 입고 있는 건 누더기인데 왕좌에 앉혀서 갑자기 해본 적도 없는 한 나라의 행정업무를 책임지라니. 망하면 다 내 탓이라니. 모성이란 왕관은 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 얹어졌단 말인가. 한나라의 왕도 재상을 비롯해 각계 관료들과 내 시중을 들어줄 인간들이 수두룩한 상태로 일을 하는데- 심지어 나는 다 내가 해야 한다. 타이틀만 왕이었지 업무배치는 노예의 것 아닌가.

더욱 불합리한 사실은 노예는 시키는 것만 하고 책임질 일이 없는데 나는 내가 알아서 하고 책임도 혼자 져야만 한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왜 더 이상 아무도 현모양처를 꿈꾸지 않는지. 이딴 걸 행복한 인생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범인류적 사기극이고 여성의 교육권이 높아진 지금 그게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모양처를 요구받는다. 비단 남성 군만이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성별인 여성마저도 애가 생겼으면 생각을 고쳐먹고 전통적 어머니상을 유지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게 다 거지 같은 분유광고 탓은 아닐까. 샤방한 어머님이 샤방한 아기를 끌어안고 잔잔한 클래식을 바탕으로 차분한 음성의 성우가 뭐라 씨부리는 바로 그 광고.

현실은 당장 홈리스라 해도 의심받지 않을 몰골로 아무리 흔들어도 식지 않는 분유병을 쥐고 있는 엄마와 삶고 또 삶아 얼룩덜룩한 내복을 입고 죽어라 밥 달라고 우는 아기인데. 그리고 집에 들어온 남편 새끼는 내 꼬락서닐 보면서 옷 좀 사 입으라고 하며 마치 본인이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매우 관대하고 자비로운 남편인 것처럼 굴겠지. 현모양처는 얼어 죽을. 그 시점에서 인생은 데스매치다.


나는 글러먹은 엄마에 글러먹은 아내이자 며느리다. 딸이라는 이름이 주 포지션일 때도 그다지 좋은 딸은 아니었는데 결혼 좀 했다고 사람이 고쳐졌으면 난 내 남편을 백만번은 고쳐 쓰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개망나니 태자가 왕관을 썼다고 현왕이 될 수는 없는 법. 다들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엄마라는 신분 앞에서는 사람이 싹 바뀌길 바랄까. 그 모든 굴레에서 지긋지긋했던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현모양처라는 꿈을 꾸지 말라 가르쳤다. 그리고 그 밑에서 자란 우리는 그냥 기성세대보다 나약하고 모자란 엄마들로 평가받으며 아이를 키운다.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9. 세상 모든 엄마는 모자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