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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씨 Nov 18. 2018

9. 세상 모든 엄마는 모자라다

포장지가 예쁘다고 내용물이 실속 있는가

진작에 잠든 아들 덕분에 고요 그 자체였던 밤. 완벽하게 내 것이었던 시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남편은 종종 별일 없이 전화를 했고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날씨도 좋았는데 왜 외출을 하지 않았느냐 묻는 그는 다짜고짜 내 됨됨이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 새끼


남편에게 나는 한없는 집순이 엄마다. 그에 말에 따르면, 다른 엄마들은 남편이 있든 없든 밖으로 잘만 나다니는데 나는 애를 집안에만 가둬두는 여자다. 그는 밖으로 나도는 엄마들의 실상과 속내를 전혀 모르는 천하의 멍청이가 분명하다.

물론 내가 집순이 기질이 다분한 것은 분명하다. 아들을 위해 여기저기 공연이다 놀이다 뭐다 찾아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열정적인 엄마는 못된다. 남편의 비교대상들이 대체 어떤 엄마들인지는 몰라도, 그들에 비하면 내가 한참이나 모자란 엄마이기에 내게 이러는 것이겠지. 대단치 않은 차이 정도로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라면- 내 남편은 이 새끼가 아니라 개새끼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그런 엄마'들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 쯤은. 그래도 그걸 지적당하면 견디기가 힘들다. 엄마니까 더 노력해- 라는 의미의 모든 말은 굉장한 폭력이다. 아이를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은 강제성이 너무 강해서 사람을 손쉽게 옳아맨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가 내 남편이라니, 세상 비참할 수가 없어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말이 없자 수화기 넘어 남편은 할 말 없음 끊으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지 이 새끼. 왜 갑자기 시비지. 넌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모자 오늘 하루 멋진 하루였는데. 네가 뭘 안다고.


화려하고 신나는 키즈카페, 방방장, 문화센터, 야외놀이터. 그 모든 것들이 내 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바깥 요소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평일 내내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낸 아들이 아빠가 없어도, 되도록 주말에 다양한 활동을 하길 바라는 남편의 마음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출할 때 아기 기저귀 한 톨 챙겨본 적 없는 내 남편이 수많은 엄마들의 수없는 외출에 쌓인 노곤함을 알턱이 없다. 물론, 그들은 진짜 대단하다. 그 노고를 감수하고서라도 매번 외출을 감행하는 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엄마가 대단하고 위대하고 100프로의 성실함을 갖추어야만 하는가.

아들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마치 문화센터가 공교육인 것 마냥 많은 엄마들이 그곳을 드나들던 시절, 그 문화센터를 보이콧한 죄로 나는 아직도 문화센터도 안 다닌 모지리 엄마 취급을 당한다. 그럼 나는 생각한다. 내가 문화센터를 다녔다면 내 아들이 말이 빨랐을까. 빨리 기저귀를 떼었을까. 근거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죄책감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내 남편은 모를 것이다. 아는 놈이라면 아직까지도 그놈의 문화센터 안 다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우린 제법 행복했다. 내 아들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언제나 날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미소천사고, 내가 부족한 엄마임에도 나를 사랑한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떠 옆에 누운 엄마를 내려다보며 배시시 웃어 보인 아들은 물 한 컵을 원샷하고는 저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한 나 역시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아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식사에 공들이는 편인 나는 오늘도 역시 꼼꼼하고 예쁘게 밥상을 차려 아들을 먹였고 먹성 좋은 내 아이는 식사 내내 웃으며 냠냠 꼭꼭 제 몫을 뱃속에 넣어주었다. 잘 먹는 아들을 응원하며 나는 내가 개사한 간식 송을 불러주었고 아들은 행복해했다.

다 먹고 나면 뒷정리. 아직 수저질이 완벽하지 못한지라 식탁이고 바닥이고 난리가 났지만 이제 예전처럼 화가 나지 않는다. 좀 지저분하게 먹으면 어떠한가 청소하고 씻으면 되는 것을. 그렇게 마음먹고 화가 안 나기까지 19개월이 걸렸다.

그 뒤로도 나는 아들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자동차 놀이를 하고 낮잠을 재우고 간식을 먹이고 정처 없는 수다에 맞장구를 쳐주며 하루를 보냈다. 또다시 돌아온 저녁식사 시간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멋지게 한상 차려주었고, 내 아들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주었다. 기특한 녀석.

씻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서 기분 좋게 물장난을 치게 해 주고 뜨끈한 물에 녹았다 나온 아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 수면 의식에 들었다. 큰 탈 없이 잠들어준 아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숙면 중이시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완벽한 하루였다. 내 아들은 많이 웃었고, 떼쓰지 않았고, 서로 살을 문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남편의 전화만 아니었다면 진짜 완벽한 하루였을텐데.


물론 바깥에서 일을 하는 이 남자에게 있어 나의 육아 보고는 매우 단편적이다. 때문에 어딘가 외출을 하지 않으면, 뭔가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무료하고 무가치하고 단순한 하루를 보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게 답답하고 한심하고, 우리가 집에서 뭉개고 있는 시간에 남다른 시간을 보낸 아이들보다 못나보였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원래 사람은 남일에 관심도 많고 비교도 많이 하는 종자다.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이 흥했지.

내가 외출 양이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세상에는 활발한 엄마들이 넘치지만 굳이 비교해 보지 않아도 난 집순이가 맞다. 사람들은 엄마들은 다 그렇게 외향적 육아를 지향해야 하는 줄 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매우 즐거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가 행복해하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니까 권장할만한 육아에 대한 기준이 거기에 맞춰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고 사는 엄마들이 무척이나 많다고 생각한다.

굉장한 착각이다. 남한테 보고할만한 거리가 많이 생기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건수가 있는 엄마들만 여기저기 열심히 보고를 하겠지. 맘 카페,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 기타 등등. 남들이 크게 관심 가질만한 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보고할 일이 없다. 나만해도 인스타에는 잘 차린 밥상 사진만 올린다. 대충 국말아 먹인 사진을 굳이 올릴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아이 밥을 유난하게 잘 챙겨 먹이는 열혈엄마다. 내가? 열혈엄마라고? 말도 안 되는 평가가 아닌가. 남편한테 모지리 엄마라고 지적이나 당하는 내가. 이렇듯 보고할 일이 없는 엄마들의 육아는 통계에서 누락된다. 사람들은 그 허점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하니까 내 모자람은 정당하다고 하지는 않겠다. 모자란 건 모자란 거다. 매 꿔 넣지 않는 이상 빈자리는 그저 빈자리일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엄마들의 육아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내 경우에는 주위 엄마들에게 잘 먹이는 엄마, 별걸 다 손수 다 해 먹이는 엄마로 통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보다 더 잘해 먹이는 나는 무척이나 대단한 엄마다. 그러나 내 남편의 기준에는 헛일에 과도한 기력을 소모하는 것일 뿐- 그가 생각하는 좋은 육아는 아이와 외출을 자주 하는 엄마인 것이다. 밥이야 대충 사 먹고 국말아 먹여도 많이 나가 노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뭐든 잘 먹고 활달한 아들에겐 남편이 주장하는 육아의 척도가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잘 맞을지도 모르는 육아방식을 지척에 두고도 실행하지 않는 나는 어떻게 다른 노력을 해봤자 모자란 엄마다. 남편이 메우라고 한 부분을 메우지 못하는 것은 다른데 이미 색을 다 써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색을 덜어내 메우면 될 텐데, 아마 그는 이런 내가 무척이나 답답하겠지. 하지만 그 색을 덜어내 메우면 또 다른 곳이 비어버린다. 그냥 나는 내게 맞는 선택으로 어느 곳은 다 메우고 어느 곳은 다소 비워뒀을 뿐이다. 메우는 위치를 바꾸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렵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메우는 동안 쌓은 노력이 변변찮아 보이니, 들어내고 다시 다른 곳에 노력하라는 말은- 정말 못된 말이다. 전부 메워 완벽한 액자를 만드는 엄마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정말 비참하게도 내게는 무리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적한 그가 너무 미웠다.

자신의 주장이 내게 완벽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모른다. 완벽을 요구당한 엄마가 스스로를 얼마나 낮잡아보게 되는지도 모르겠지. 사실 별일 아닌 일이다. 많은 엄마들이 사회와 남편에게 그런 요구를 당하고 있고, 그 요구에 울지 않는 엄마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세상에 나만 한심해서 당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너무 속상해서 전화를 끊고서도 한참을 울었다.


한참 울고 나니 마음이 비워졌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엄마가 모자라듯, 세상 모든 아빠도 모자라다. 완벽한 아빠? 그게 존재할리도 없지만 설사 있다한들 이 인간은 절대 아니다. 저도 모자란 부분이 있는 주제에 남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다니 남편다운 짓거리다 싶어 졌다. 원래 남 지적하고 가르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울고 있는 내가 바보 같아졌다. 그냥 한 귀로 흘릴 것을 뭘 또 헛소리에 진지하게 인생무상까지 생각했단 말인가. 심지어 남편은 그걸 뭐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땅을 팠느냐고 할 만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표본적 남성이다. 이성으로만 세상이 굴러갔으면 내가 저와 결혼을 했을 리 없다는 사실을 매우 간과하고 사는 사람이다.

뭣보다 나는 나가자고 떼쓰는 아들을 집안에 가둬둘 만큼의 집순이는 절대 아니다. 고 오염도의 대기질이나 열감기 같은 절대적인 사유가 없는 한 나가자고 하면 꼭 나간다. 아파서 어린이집도 못 나가고 밖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날도 아들이 나가자고 했을 땐 우비 뒤집어쓰고 집 앞에 나가 비를 맞고 온 여자가 나란 말이다. 근데 지가 뭘 안다고 갑자기 지적질이냔 말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RPG 게임 아이템 현질 하나만 하면 안 되냐고 묻던 남잔데. 부족하기로 따지자면 남편이나 나나 오십보백보다. 어린이집 엄마들이 좋은 아빠 멋진 남편이라고 띄워주니까 진짜 그런 줄 아나 본데, 이 역시 인스타 효과일 뿐이다. 인스타엔 아들과 잘 놀아주고 아내에게 자상한 남편만 올라오니까.

오늘도 스스로의 부족함에 죄책감을 가지며 울고 있는 엄마들이여. 옆에 있는 남편의 모지람에 주목하고, 날 키운 내 부모님의 허점을 떠올리자. 우리는 누구도 완벽한 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노력한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내 아이 역시 모자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 지지고 볶고 울고 혼나더라도 다시 안아주었다면- 그냥 그걸로 오늘 하루는 괜찮았다. 당신은 모자랄지 몰라도 당신의 하루는 완벽했다.


어쨌든 남편 말이 틀린 것은 아닌지라 좀 나가야겠다는 자기반성은 해본다. 우리 아들 키즈카페 좋아하는데.... 따라다닐 생각 하면 암담하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해보자. 어찌 됐건 엄마고, 내 아들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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