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씨 Mar 20. 2019

12. 내게 온 것을 환영해

계획임신입니다. 일단은.

나는 내가 첫째를 낳았을 때, 사람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기억은 잊고 금세 둘째를 가져버리는 것에 경악을 했다. 물론 이는 생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증명된 근거가 있었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난하진 않았다. 단지 인간의 몸뚱이가, 나의 정신세계가 그토록 종족번식에 친화적이라는 사실이 좀..... 징그러웠다. 육체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회에서 요구되는 인간의 그 어떠한 것(?)에 무척 반하는 일이구나 싶어 져서.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 스스로 그 기현상을 증명하고야 말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또 아이를 계획했을까. 첫째 때 입덧으로 자살의 욕망 직전까지 갔던 주제에, 왜 그 모든 기억을 망각하고 임신 중 행복했던 시절만 회상했을까. 다시 임신이 된다면 더, 무척이나, 매우 행복하고 즐거운 임신기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임신을 계획했다.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이란 말인가..... 5개월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첫째의 태명은 두루다. 빠짐없이 두루 갖추고 나오라고 지은 이 태명에는 사족이 하나 붙어있었다. 결혼 초반부터 아이 둘을 계획했던 우리 부부는(남편은 셋 타령을 목구멍까지 올렸다가 울대를 맞기 일수였다) 순전히 나의 독단으로 첫째와 둘째의 태명을 미리 골라놓았다. 첫째는 우리가 산전검진을 끝내고, 3개월의 금주와 영양제 복용 후 피임을 중단하자마자 바로 찾아왔다. 덕분에 내 친구들 사이에서 한동안 내 남편은 스나이퍼 김으로 불렀다.

그렇게 모든 산부인과계의 극찬을 받을만한 준비와 타이밍으로 첫째를 임신한 나는 둘째도 바로 찾아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봐도 그렇듯이, 원래 신들은 좀 재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이 근자감 좀 가졌다 싶으면 꼭 방해를 하거나 과도한 벌을 내리지 않는가. 6개월이 넘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난임의 범주에 들어간다던데..... 5개월. 5개월 동안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다니! 사실 돌이켜보면 그쯤은 일반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을 범위인데, 첫째를 너무 계획한 대로 척척 가졌다 보니 우리 둘 다 보편적 기준을 상실한 상태였던 것 같다.

여하튼 남편과 나는 심각해졌다. 남편은 첫째를 준비하던 때와 다른 지금의 직업이 본인의 정자 활동을 감소시킨 것 같다며 이야기했고 나는 난산으로 인한 제왕절개가 내 몸 어딘가에 과부하를 일이켰던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장시간 진통 끝에 아이가 위험해져 응급수술을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이미 하려고 하던 일에 필요한 자격증들을 모두 수료했고 둘째를 계획하고 있으니 실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둘째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지 않다니. 태명까지 미리 지어놨는데! 내 인생이 항상 계획대로 흘러갔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 있는 인생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인간이 나였는데- 이토록 해결방안이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고작 5개월 가지고 비탄에 잠길 정도로 나는 오만방자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다른 일이었으면 이토록 우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인 문제만은- 솔직히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안 풀리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다 보니- 조선의 토속신앙에만 기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날 힘들게 했다. 요즘 시대에 삼신할머니 타령을 해야 하다니.

내가 매달 임신테스트기를 붙들고 있기 시작하자 남편은 배테기라는 물건을 검색해 주문해주었다. 그래. 난임은 초기부터 잡아야 한다. 다음 달부턴 나도 이것을 사용해보자 각오하며 택배를 받아들였다. 동시에 너덜거리지만 이제 임신을 할 테니 나중에 사야겠다며 미루고 미루던 천 생리대 교체도 끝내버렸다. 그리고 일을 하기로 했다. 이미 메인카가 있으니 유지비가 적게 드는 소형차를 한대 뽑고 큰돈 들여 운전연수도 받았다. 나에게 자격증 과정을 사사해주신 이모에게도 올해 안에 운전을 정말 마스터해놓겠으니 내년부터 일을 배우겠다고 연락도 했다. 일을 시작하면 아들내미 어린이집도 종일반으로 바꾸려고 프리랜서가 맞벌이를 증명하려면 어떤 서류를 내야 하는지도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끝내 놓았다. 내가 상상하는 내년의 내 모습은 실버미술강사였다. 그렇게 날짜는 2018년의 끝자락- 연말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달, 생리가 없었다.


내가 이래서 종교가 없다. 신은 정말이지 나쁜 종자들이다. 배테기를 박스로 샀는데. 그 비싼 천 생리대를 싹 다 버리고 새로 샀는데. 운전연수를 받았는데. 차를 샀는데!!!!

기다려도 생리가 없었다. 익숙한 소화불량이 느껴졌다. 혹시 하는 마음에 또 사고만 테스트기. 진하게 올라온 한 줄과 흐릿하게 올라오는 또 한 줄. 나는 화장실에서 비명을 질렀다. 첫째 땐 회사 화장실에서 하느냐고 억 소리도 못 내봤는데, 내 집 화장실이라서 그랬는지 둘째라 그랬는지 계획임신인데도 계획대로 안돼서 그랬는지 말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마침 쉬는 날이라 화장실에 들어앉은 내 대신 아들내미 등원 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은 그 비명을 잊지 못하리라.

 그렇게 우리에게 고루가 찾아왔다. 첫째가 두루 갖추라고 두루였듯이 둘째는 고루 갖추어 나오라고. 내가 원래 귀엽고 아기자기한 태명에 알레르기가 좀 있다.

나에게는 또다시 지옥의 입덧이 찾아왔고 운전도 일도 새 생리대도 포장도 안 뜯은 배테기도 모두 심연에 잠겨버렸다. 동시에 좋은 아이템이 생각날 때마다 쓰던 브런치도 그렇게 중단되었던 것이다.


이제 6개월이니 성별은 나왔다. 나는 목매달이 되었다. 아들이란다. 주변의 모든 태몽이 여자아이 태몽이라 둘째는 딸일 줄 알았는데 초음파에 떡하니 고추가 보였다. 솔직히 첫째 때는 고추를 본 순간 어쩐지 눈물이 좀 났었는데- 고루는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아들로 스타트를 끊었더니 딸에 대한 로망보단 딸 키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이 더 컸는데-내가 워낙 육아에 소질도 의지도 적은 인간이다 보니- 또 아들이라니 맘이 편해졌다. 그냥 또 고만고만하게 키우면 되겠구나 싶어 졌달까. 남편도 아들이라 좋다고는 하는데, 자꾸 첫째 때보다 초음파상의 고추가 흐린 게 고추가 아니라 탯줄이라던가 뭐 그런 건 아니었을까 이런 소릴 하는 중이다. 뭔가 안심되면서 아쉬운 상태인 듯. 본인 팔자에 그래도 아들딸 하나씩 있을 줄 알았다나 뭐라나.

며칠 전 아들을 재우고 침대에 드러누워 태담 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이 정신 나간 남편 놈이 또 셋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왕 둘째도 제왕절개를 할 테니 연김에(?) 한방에 피임시술도 받아버릴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의외였지만- 스스로 세 번째 임신의 가능성을 아예 싹부터 자르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의 대화 끝에 그냥 종전같이 피임을 하고 혹여 생긴다면 그것은 진짜 팔자소관이라는 결론을 내린 참이었다. 내가 그렇게 단호하지 못했으니 남편의 셋째 로망을 신혼 때만큼 울대를 때려가며 막지는 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헛소리를 짓거리고 말았다.

셋째가 만약 생긴다면 그야말로 미련 없는 최후의 임신이 될 것 같으니 태명은 보루라고 해야겠다고. 스스로도 미친 소리 같다 싶긴 한데, 이미 계획대로 안 되는 계획임신을 해봤더니 진짜 임신은 하늘의 뜻이라는 말을 실감한 것 같다. 

그래서, 삼신할머니- 내 팔자에 애가 몇입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11. 파트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