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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Apr 25. 2019

#1. 대학 교직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

꽃이 만개한 캠퍼스에서

   '화석'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얼핏 들은 것 같다. 요즘 쓰는 말인 듯한데, 나는 다행히 그런 끔찍한 단어로 불리는 때가 오기 전 대학을 빠져나오긴 했다. 총 7년, 내가 대학에 머무른 기간이다. 남자 학생들처럼 군대를 갔다 온 것도 아니고, 창업 같은 걸 도전했다가 실패한 멋진 경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마디로 신나게 놀았다. 외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보기도 하고,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며 타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모든 열정을 쏟았던 때도 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 매일이 즐거웠다. 대체 언제 졸업할 건지 한숨 쉬시는 부모님의 걱정이 나에게도 걱정인 것은 아니었다.  


계속 대학에 머물고 싶다

   막연하게 내가 계속 대학 캠퍼스에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들, 도서관 책장 넘어가는 소리를 어느 때고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대학 교직원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학에서의 업무 영역은 참으로 다양하고 방대했다. 무턱대고 대학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건 좀 멋없어 보여서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학이라는 직장도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봐도 그만큼 즐거운 곳일까, 그게 궁금했다.


1. 아름다운 공간, 캠퍼스!


    "나는 빨리 취직해서 사원증 목에 걸고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 사서 수많은 직장인들 틈을 지나다니고 싶어." 예전에 친한 친구가 본인의 로망이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도 꽤 공감했었던 거 같은데, 목에 걸린 사원증이 좋아 보였던 건가 아님 점심시간에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는 직장인의 멋이 그럴듯해 보였던 건가, 어느 대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캐나다 UBC의 멋진 캠퍼스



  나의 로망은 대학 캠퍼스 안에서 근무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왁자지껄 웃어대는 학생들, 사계절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나무와 꽃들이 빽빽하게 수놓아져 있는 그런 캠퍼스! 또한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 캠퍼스의 역할은 오로지 학생들의 학습 지원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어느 곳으로 시선을 놓아도 생동감과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캠퍼스에 있고 싶었다. 

     

2. 대학교에는 도서관이 있다.


  어느 직장에 다니고 있던 시절,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다시 반납할 때 직접 오고 가는 것이 마땅치 않아 늘 엄마에게 부탁하곤 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이 많지도 않으면서 엄마에게 미안한 부탁까지 자꾸 해야 한다니, 어떻게 봐도 불편한 상황이었다.


                                               미국 예일대 도서관인데,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대학교에는 도서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이 잔뜩 있고, 무엇보다 직원에게는 대여기간이 훨씬 길게 부여된다는 것을 알고는 대학에서 근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퇴근하고 언제든지 도서관에 들려 책을 보거나 빌릴 수 있는 그 특권이 간절했다.  


3. 꿈 많은 학생.. 대학생들과의 만남


  나는 학부시절,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같은 과 친구들 대부분은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시험을 준비했고, 실제로도 많은 친구들이 현직 교사로 근무 중이다. 나는 학생들을 만나 막연히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뭘 가르치는 사람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아마 사범대학이 그나마 학생들과의 접점이 가장 많을 거라는 얕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나 보다. 


  4학년 1학기에 근처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다녀온 뒤, 교사가 되기에 나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을 챙겨주고 상담해주고 같이 놀아주는 건 참 재미있었는데, 언어영역을 가르치는 건 정말 지독히도 흥미가 없었다. 물론, 학생을 가르쳐보겠다고 칠판 앞에 서 있기는 한데 대단치 않은 내 지식이 탄로 날까봐 전전긍긍 불안했던 당시의 내 모습이 더 싫기도 했었고.


  대학에서 학생들이 학습하고, 캠퍼스를 즐기고, 미래에 대해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며,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시기에 졸업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싶었다. 무언가를 가르쳐줄 순 없어도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한 의사결정에는 자신이 있었다.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든 학생이 주저 없이 찾아올 수 있도록 넓은 품을 가지고, 가장 필요한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직원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훨훨 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었다.  



4. 사학연금, 그리고... 


  이건 좀 현실적인 이유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하고 나서도 충분히 나의 능력을 펼치며 어딘가에서 쓰일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었다. 의지만 있다면 어느 조직에서든 그럴 수 있겠지만, 다른 기업이나 기관에 비해 업무 강도나 근무환경이 기혼 여성에게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대학교의 정규직이 되면 사학연금에 가입된다. 매달 공제되는 금액이 많긴 하겠지만, 그래도 노후에 국민연금보다는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이것도 막연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30년 후에도 더 나을까.. 그건 모르겠다). 그리고, 나중에 나의 자녀에게 엄마의 직장이 대학교라는 건 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 나는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캠퍼스라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꽃이 피었는지 뭐가 바뀌었는지 눈길도 못줄만큼 바쁠 때가 많지만,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공감해주며, 퇴근해서는 도서관에 가 좋아하는 책들 마음껏 보고 그렇게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현직에서 느끼는 교직원의 차이,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들, 혹은 준비과정 같은 것들을 글로 옮기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또다시 어떤 일에 푹 빠져 이직을 고민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꼭 하고 싶었던 일인 만큼 후회 없이 잘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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