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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Apr 29. 2019

#2. 이토록 매력적인 직업, 대학 교직원에 대하여_

0. Prologue

   유치원에 다닐 때 직업체험 놀이를 하면 우리 반 선생님은 꼭 나에게 간호사 역할을 시키시곤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를 괴롭혔던 남자 녀석이 제멋대로 흰 가운과 청진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건 그냥 두셨으면서. 입을 삐죽거리며 서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간호사 캡을 머리에 씌워주시며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설명으로 나를 달래주려 하셨다. 누가 간호사라는 직업이 안 좋다고 했나,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는데.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 선생님들은 우리의 사물함 앞에 붙일 자기소개서를 만들도록 하셨다. 나를 표현하는 캐릭터를 하나 그린 후,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들을 적는 뭐 그런 거였는데, 그림을 그리거나 꾸미는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늘 곤혹스러운 진학 절차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장래희망'란이었다.


   사실 아무 직업이나 적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담임선생님은 그날의 우리 작품(?)을 꼭 교탁으로 나와 설명하게 하셨다. 의사를 하고 싶다는 친구는 불치병을 치료하고 싶다고 했고, 소방관을 하고 싶다는 친구는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발표를 마쳐 선생님의 예쁨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초콜렛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초콜렛 가게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치만, 나는 그렇게 적지 않았다. 보나마나 친구들은 웃어댈테고 선생님은 슈퍼마켓 사장이 되고싶다는 친구를 바라보던 표정으로 나를 보실테니까. 외교관이라고 적었고, 넓은 세계를 무대로 우리나라와 외국의 가교 역할(그때는 '가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을 하고 싶다는 엄마의 멘트를 그대로 읊었는데 나는 어느덧 우리반에서 영어를 제일 잘할 것 같은 학생이 되어 있었다.






   세상에 어떤 직업들이 있는 지 알려주지도 않았으면서 왜 뭐가 되고 싶은지를 자꾸 물어봤을까. 성인이 되기 전에 아마 한 100번은 넘게 들어본 것 같다. 근데 막상 성인이 되고 나면, 나중에 무슨 직업을 갖고 싶은지 잘 물어보지 않는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 학과를 보고 지레 짐작하여 나를 결정해버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참 이상한 일이다. 


   취업 관련 통계조사에서, 대학 졸업자의 담당 업무와 전공일치도가 낮게 나와 그 원인으로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교사는 못 될 학생임에도 사범대학에 고여 있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과 교수님들이나 학과 교육과정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세상에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 충분히 탐색할 기회도 주지 않고 대뜸 한방에 적성에 맞는 학과를 골라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문제였지.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오히려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더 어려워진 지금에도 대학 교직원이 되기 위한 정보들은 현저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증명서를 떼러 가거나, 장학금을 신청하러 갈 때 등등 기회가 생길 때마다 교직원 선생님께 이것저것 여쭤보며 귀찮게 해드렸던 기억이 난다. 어느 부서의 팀장님께서 그런 내게 "공부 열심히 하면 다 될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을 때,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분간은 이 공간을 대학 교직원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있는 곳이며 급여 체계는 어떠한 지 등을 홍보하는 곳으로 쓰고 싶다. 나는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본업을 소개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알려진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까지도.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 많은 직업들을 다 알고 대학에 입학하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나는 경영학과를 나왔으니 경영을 해야하나? 라는 고민은 하지 않도록, 여러 직업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는 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지만, 너무 맛있는 초콜렛을 먹을 때면 내가 더 맛있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같다고 해야 할까. 내가 넘어지고 다쳤던 순간들을 가감없이 알려주면 다른 사람들은 조금 더 편하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 일단 초콜렛이란게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주고 초콜렛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까지도 매혹시킨 다음, 사실은 맛있지 않은 초콜렛도 있다는 걸 알려주면 앞으로 계속 초콜렛을 먹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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