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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Aug 04. 2024

인생은 어쩌면 오래 달리기다

고등학교 3년, 대학만 잘 가면 인생의 모든 과제가 끝나는 것처럼 우리는 공부에 매달렸다. 우리 삶 목적이자 목표는 수능이 되어 우리는 오직 그날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인생 시계 초점을 그곳에 맞추었다. 당연히 수능 결과에 따라 인생의 희비가 갈렸고 누군가는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좌절과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학 4년, 우리는 새로운 인생 과제를 부여받았다. 수능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이었다. 바로 취업이라는 높고 험난한 산. 어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싹 닦으며 말을 바꿨다.



- 이제 취업만 잘하면 돼. 그럼 더 바랄 것이 없어(그 뒤엔 결혼, 출산 건 비밀)

- 언제는 수능만 잘 보면 된다며?

- 수능도 결국에는 취업을 잘하기 위한 거야



졸업 반이 되자 취업을 한 친구는 천국과 같은 기쁨 속에 있었고, 취업을 못한 친구는 엄습해 오는 걱정과 불안감에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인생이 '졸업 전 좋은 곳 취업'의 성적표대로 영원히 흘러가게 될 것 같은 기분으로 말이다. 아마 취업이 안 된 사실보다 친구들이 취업할 때 나만 안된 사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성공열차 같은 것에 올라탔는데, 나만 역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기분은 침울함 그 자체일 테니 말이다.







졸업과 동시에 백수라는 신분이 되는 그 당시에는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인생은 어렵고 험난한 것이라며 쓰디쓴 독주를 마시는 듯한 기분과 언제 끝날지 모를 어둠의 시기에 속절없이 애가 탄다. 나만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좌절감에 우울하기도 하고, 대학생활의 노력들이 헛되이 느껴져 허무함도 밀려온다. '남들은 성공하는데 왜 나만 실패할까?' 애써 침착해보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만 강해질 뿐이다.






그러나 그게 진짜 실패일까? 아무리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실패가 맞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인생에서 무수히 많이 겪게 되는 좌절과 실패들이 진짜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 시간 속에 있을 때는 잘 모른다. 전부일 것 같은 수능도, 취업도, 또는 뜻대로 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절대 인생의 성공이란 승패를 가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는 졸업 전후로 우리가 하나둘 씩 취업하며 떠나갈 때 학교 도서관에서 씩씩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손 흔들어줬다. 나도 곧 합격할 테니 걱정 말라며. 그러나 2년간 그녀는 잠잠했다. 들려오는 소식으론, 몇 번의 면접을 보고 최종면접까지 간 회사도 있으나 결국 다 떨어져서 아직 도서관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안쓰럽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미안하기도 했다. 길어지는 시간만큼 얼마나 힘들었을까. 씁쓸함과 애잔함이 감돌았다. 그러다 드디어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S대학교 교직원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뭐? S 대학교?? 거길 들어갔다고?? 학생으로 들어가기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든데, 교직원이 되어 들어가다니! 우린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졸업 때 의기양양 먼저 취업했던 우리들은 주로 대기업과 외국계회사로 입사했는데, 그녀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조직에 합격했기에 일순간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 아무래도 금융계에선 내가 선호하는 타입이 아닌가 봐. 결국 포기하고 방향을 틀게 되었어





우리 8명의 멤버 중 혼자 취준생으로 남겨졌던 그녀 금융권을 준비하면서 겪은 필기시험 내공과 상식부터 경제까지 총망라한 지식, 수 없이 떨어지며 쌓은 탄탄한 면접실력이 더해져 공조직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장 뒤늦게 가진 그녀는 결국 우리 중에 가장 결혼을 빨리했고 자녀들도 가장 먼저 낳았다.






과연 그녀 실패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남들보다 뒤처지고 탈락의 고비만 마셨던 숱한 시간들을 이겨낸 그녀는 본인이 불과 몇 년 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시켰고, 주변의 걱정과 위로의 눈빛들을 일순간에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2년 전으로 돌아가서 앞으로의 미래를 모른 채 그녀를 바라봤다면? 아마 대부분이 실패라고 단정 지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크게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실패로 쌓아 올린 시간이 결국엔 더 큰 성공이 되어 돌아왔다. 이 사례는 2년이란 한정된 기간이었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어떨까? 지금은 비록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지만 언젠간 반대의 순간도 맞이하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지금 실패라고 느꼈던 일들이 결국 더 나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여정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혹은 오히려 더 잘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이 시기를 지나고 나야 알 수 있다. 언제 어떻게 내게 꽃길이 열릴지 모르니 이 혹한의 시기를 일단 이겨내고 지나가야 한다.






'돈의 속성'의 저자이자 사장들의 스승인 김승호 회장님은 현재의 성공한 사업을 하기까지, 무려 10년 동안 실패를 겪었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면 실패해서 접고, 또 시도하고, 또 실패했다. 그런 반복을 10년간 하고 난 뒤에 드디어 성공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만일 10년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김승호 회장님을 뵐 수 있었을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갔기 때문에,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도전과 성공을 일으킬 수 있었다.






평생 온갖 고생 고생만 하다가 치매 위험 진단까지 받은 한 할머니, 손녀와 떠난 해외여행 기록 영상을 가족끼리 보기 위해 올렸는데 일순간 대박이 났다. 그녀의 책을 보면 정말 드라마에 나올법한 온갖 역경의 파노라마를 겪어오셨다. 그런 그녀가 우연한 영상을 시작으로 구글에 초대받는 스타이자 인플루언서가 되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자체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이런 극단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평생 가족을 뒷바라지하느라 '직업'이 딱히 없고, 직업란엔 늘 '전업주부'를 적었던 우리 엄마. 엄마의 꿈과 직업을 묻기엔 어느새 60대가 되어버린 엄마. 직업이 있었어도 이미 은퇴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엄마가 최근 처음으로 미술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로 사느라고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엄마의 꿈, 남들이 은퇴하는 나이에 처음으로 그 길에 한 발짝 내디딘 것이다. 그녀는 자라나는 꿈나무처럼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품은 수상을 받게 되었고, 다른 수상작들과 함께 전시회까지 열렸다. 60년 만에 조심스럽게 열어 본 엄마의 꿈이 드디어 세상의 빛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지금 처한 상황과 현실이 전부로 다가올지라도, 그것으로 모든 걸 속단하기엔 이르다. 꿈이 없다고 평 말해오다가도 어느 70대의 멋진 날, 꿈이 생길 수도 있다. 실패의 연속일지언정 '끝'이라고 단정 짓진 말자. 우리에겐 다가 올 많은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이 풀질 지는 더 가봐야 한다. 실패가 결국 그 길로 가는 능력치를 쌓아 올려주고 있을 수도 있다. 실패는 내가 포기하는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우연의 점들이 연결되어 문이 열릴지 모르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보자.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속단하고 평가하지 말자. 나의 인생엔 더욱 단정 짓지 말자. 그저 아직 피기 전의 꽃망울일 뿐이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시린 겨울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활짝 열려 봄의 햇살처럼 뿜어내는 날이 올 것이다. 혹한의 시기를 견뎌낸 만큼 따뜻한 봄날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호흡을 가다듬고 페이스를 조절해 보자.






인생은 오래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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