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본태박물관은 본연의 아름다움과 건축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노출 콘크리트에 빛과 물을 건축 요소로 활용하여 세련되면서도 우아하고, 웅장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어서. 역동적이면서도 동시에 안정감을 주었다. 건축물은 개방적이면서도 공간을 구획하여 리듬감을 선사하며 넓고 푸른 하늘과 건물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었다.
가족과 함께 전시 관람 중, 우연히 본태 박물관을 10분 정도 조용히 혼자 거닐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거대한 수경폭포 앞에 한참을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수경폭포는 내리막길, 아니 시선에 따라 오르막길인 길을 따라 점점 길이가 길어지는 외벽의 폭포형태 공간이었다. 그리고 팔 길이의 일정 너비마다 하나의 블록처럼 라인이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서서 블록마다 제각기 다른 속도와 모양으로 내려오는 폭포수의 물방울들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내게는 이 폭포의 물결 형상이 마치우리의 인생처럼 느껴졌다.
짧은 길이로 시작되는 폭포수는 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점점 길어진다. 제 각기 다른 폭포의 길이는 인간의 수명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각 블록마다 다른 양상의 물방울 모양들이 제 각각의 형태로 물결을 만들어내며 떨어져 내렸다.멀리서 보면 같은 재질의 물이지만 블록마다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물결대로 춤추고 있었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물방울의 숫자와 에너지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지만, 그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채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과 성취, 명예, 성공을 위해 쉴 틈 없이 달리는 사람도 있다. 무기력하고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인생이 힘들기만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제각각이다. 주도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부정과 불만, 회의감으로 세상을 보는 이도 있다. 희망과 감사로 채우는 사람과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형태는 모두 다른 양상의 물방울들로 수놓아져 우리의 인생을 채워간다. 물의 본질은 같으나 삶을 대하는 태도, 살아가는 방식, 생각, 가치관, 경험치들에 의해 각자의 모양대로 폭포벽을 수놓는다.
우리의 삶은 지나고 보면 궤적을 남긴다. 힘찬 물결과 물방울무늬들로 다채롭고 웅장하게 수놓은 폭포벽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연상시킨다. 잔잔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부드럽고도 강인하며 유독 반짝이는 물결은 남을 배려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간 인생을 연상시킨다. 반면 정적이고 수동적이며 이렇다 할 흔적 없이 마지못해 위에서 내려오는 물살에 떠밀려 내려오는 폭포수의 모습도 있었다. 반짝이는 많은 물방울들로 아름답고 풍요롭게 빛나는 폭포도 있었고, 그와 반대인 모습도 있었다. 나는 어떤 물결의 궤도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을까? 어떤 방식과 모습으로 나만의 폭포를 수놓아야 할까? 뒤돌아 봤을 때 내 삶이 아름다웠다고, 반짝이는 추억과, 후회 없는 행동들로 가득했다고 얘기하려면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워야 할까?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출처: 본태박물관 누리집
물결이 흐르는 폭포를 계속 바라보니 천천히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도가 쏜살같았다. 위에서 떨어진 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닿아 있었다. 울퉁불퉁 난 벽면을 따라 다양한 양상을 만들어내는 것 같더니 어느새 그 생명을 다해 저만치 사라져 있었다. 이게 바로 인생의 속도인 걸까?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버리는 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아웅다웅 살았던, 화려하게 살았던, 힘들게 살았던 결국 순식간에 인생은 지나가버린다. 결국에는 끝에 맞닿게 될 것이고 다시 순수한 물이 되어 순환한다.
인간이 어떤 힘으로도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폭포를 막을 수 없듯이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삶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것뿐이다.
나는 어떤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물결을 만들어 내고 싶은가?
그 키는 오직 내가 쥐고 있다.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떼어 낸 달력 뒷장에 중요한 그날의 일을 적어 놓고,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는다. 거기에 적힌 풍부한 내용,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에 자부심을 느끼며 즐겁게 되돌아볼 수 있다.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