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시댁에 인사를 가고 시댁 분위기를 접한 뒤 나는 최고의 시댁을 만났음을 알아차렸다.
재력보다
사랑보다
화목함보다
우선이 되는 조건을 가지고 계셨다
"간섭하지 않기"
시어머니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 분이셨다. 어머니의 자식을 그렇게 키우셨다. 잔소리 하나 없어도 자식들은 제 앞가림 잘하고 반듯하게 컸다.
그 덕에 아들내외에게도 이러쿵저러쿵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오면 왔냐, 가면 가냐로 받아들이셨다
어머니는 신혼 초 부엌일 할 때 똑똑한 며느리 앞에서 바보같이 실수했다고 멋쩍어하신 적이 있는데 나는 안다. 어머니야말로 진정으로 현명하신 분이라는 걸 말이다. 부족한 며느리 앞에서 단 한 번도 잔소리나 조언, 쓴소리를 하지 않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간섭하지 않는다를 실천용어로 바꾸면 '잔소리하지 않는다'이다. 어떤 잔소리도 없이 반겨주는 시부모님 덕에 신혼 초 나는 시댁을 자주 가려고 난리였다. 심지어 남편이 신혼 때 우리 집에 오는 친구들 이불 가지러 잠깐 시댁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난 따라가겠다고 졸랐을 정도다.
그 뒤로도 1달에 1번은 꼭 시댁에 방문했다. 자주 찾아뵙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유쾌한 시아버지는 나를 엄청 예뻐해 주셨다. 아버님 친구들 인사자리에서 말씀하셨다.
- 시댁의 '시'자 들어가는 건 쳐다도 안보는 거라면서? '시금치, 시 00, 등등'
- 아니에요, 아버님. 저 시금치 좋아해요^^
- 아니다~ 특히 아들 신혼집에 불시에 방문하는 건 절대 하면 안 된다면서?? 나 이 친구들한테 교육 단단히 받았다. 하하. 아무 걱정 말거라~~
끼와 흥이 넘치는 아버님은 센스가 있으셨다.
신혼의 어느 날 시부모님께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드렸다. 바쁘게 살다 보니 며칠만인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있었다. 아버님은 반갑게 스피커폰으로 받으시곤 어머님도 냉큼 부르셨다. 나 역시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남편과 함께 통화했다.
- 어이~~ 우리 며느리~~~~~~~ 잘 지냈어???
아버님은 전화를 자주 하라는 잔소리 대신에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대답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며느리 목소리 잊을 뻔했다는 애교 섞인 말씀도 살짝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요지는 내가 전화해서 너무 좋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었다. 이렇게 반겨주시니 고맙고 죄송한 마음에 '더 자주 전화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종종 아버님, 어머님, 나, 남편과 넷이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기억이, 그때의 유쾌한 행복감이 여전히 진하게 남아있다.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행복감이다. 이래서 아이를 화목한 환경에서 키우면 단단한 내면으로 자라나는가 보다. 그때의 온기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제는 다 같이 통화를 할 수가 없다.
아버님이 올해 하늘의 별이 되셨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내 브런치 구독자셨는데 더는 내 글을 보지 못하신다. 이제 내게 남은 할 일은 아버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화목'의 덕목을 잘 지켜나가는 거다. 맏며느리로서 가정의 화목을 잘 유지해 가야겠다.
-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워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어느 날 밤, 아버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리운 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