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살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자세

by 레나팍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매달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생일파티'를 해준다. 이제 7살이 된 아이는 유치원 생일파티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어떤 마음인지 함께 들여다보자


에피소드 1.

- 아이: 엄마, 나 초등학생 때는 생일파티 때 어떻게 할 거냐면~~

- 엄마: 응?? 초등학교?? 하하. 초등학교에선 생일파티 없어

- 아이: (놀라고 실망한 표정으로) 응? 왜??? 왜 안 해주는 거야?? 초등학교엔 생일파티 없어???

- 엄마: 아~~ 음~~~ 그러니까 그게 왜 없냐면?? 음... 초등학교는 정규교육과정인데... 음..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아이 입장에서는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5년 동안 기관에서 생일잔치를 했다. 그러니 당연히 초등학교에서도 생일파티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나에겐 당연히 아닌 건데, 아이에겐 당연히 맞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아이 경험을 통틀어서는 당연히 '초등학교 때도 기관에서 다 함께 생일파티를 공식으로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 대화를 통해 나에게 또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또 다른 시각에서는 또 다른 나라에서는 당연하게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열린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겠다.


에피소드 2.

아이는 유치원 생일파티에 입을 옷을 본인 생일 선물로 요청했다.


- 엄마, 아빠: 생일 선물로 뭐 갖고 싶어?

- 아이: 옷!!! 나 유치원 생일파티 때 입을 드레스 갖고 싶어


아이는 매달 친구들의 생일파티를 겪으며, 이번 유치원 생일파티에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입을 예쁜 드레스를 원했다. 반짝이고 화려하면서도 너무 화려하지 않아야 하고 공주처럼 예뻐 보이면서도 촌스러운 공주 같아 보이진 않는 그런 프릴이 달린 원피스를 골랐다. 내가 봐도 주인공 같은, 꾸안꾸에서 조금 꾸민 것 같은, 그러나 너무 요란하지 않은 예쁜 원피스였다. 비싼 것만 빼면 아이에게 참 잘 어울리는 원피스였다. 결국 생일날엔 또 너무 화려하다면서 다른 원피스를 골라 입고 갔지만 어쨌든 아이는 생일날을 고대하며 의상까지 미리 준비해 두었다.


에피소드 3.

아이가 다니는 기관은 생일자가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전하는 문화가 있었다. 조금 어색했지만 그동안 생일자로부터 선물을 받았으니 문화에 동참하기 위해 2주일 전부터 답례품을 고민하고, 품목 후보를 정하고, 아이와 함께 골라서 주문했다. 그리고 10여 개의 선물을 아이와 함께 포장했다. 아이의 기여를 높이기 위해 둘이 힘을 합쳐 선물을 포장하는데 한참 포장하더니 아이가 얘기한다.

- 아이: 후암~~ 선물포장하기 힘들다. 왜 이렇게 많아~~

- 엄마: 그러게~~ 그래도 얼마 안 남았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뜻밖이었다.

- 아이: 은주랑 하율이(가명)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앞서 생일파티를 한 친구들이었다. 우와!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너무 뜻밖이고 기특했다. 공감 능력이 표현되는 게 엄마로서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다시 힘내서 포장한 긍정의 힘도 기특한데 한발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이해능력까지 보이니 새삼 기뻤다. 어른인 우리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배려하기가 힘든데 말이다. 배려와 공감이 가능한 어른으로 자라나길 기대하며, 나역시 성숙한 어른이 되야겠다고 다짐한다.


에피소드 4.

드디어 고대하던 생일파티 당일날이 되었다. 1달 전부터 이 날을 기다리며 옷을 준비하고, 친구들 선물을 준비하고, 몇 밤 남았는지 고사리 손으로 세어가며 기대해 왔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 바로 전날 아침, 아이의 한쪽 눈이 퉁퉁 부었다. 모기에 물린 것 같았는데, 한쪽눈이 윙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안 떠질 만큼 분홍색으로 부어 있었다. 눈 크기가 평소의 1/10으로 작아져 있었다. 예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개구리 왕눈이'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전날 저녁엔 그래도 다음날 가라앉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눈찜질도 하고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일찍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생일파티 당일날 눈은 변화가 거의 없었다. 조금 더 부은 것 같기도 했다. 바라보는 나도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아이는 실망감과 속상함에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이게 뭐야~~~~ 내 눈!!! 눈이 이상해서 뭘 해도 이상해. 어떡해. 머리띠 써도 안 예쁘고!! 모기 미워. 모기 나빠. 으앙~~~~~~~~~"


옆에서 울면 눈이 더 붓는다고 얘기했지만 그 얘기가 들릴 리가 없었다. 이미 여기서 더 부을 것도 없을 만큼 누가 봐도 빨갛게 부어있었다. 나는 T 엄마다. 평소 감정적 공감에 약했다. 그래서 요즘 '감정코칭'을 깨닫고 '감정 알아차리기'를 연습 중이었다. 아이가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 그걸 무시하고 해야 할 일이나 해결책부터 지시하지 않고 우선 그 기분을 내가 알아차리기가 미션이다. 처음엔 울음을 달래느라 평소처럼 나름의 해결책이나 묘수를 제안해 봤다.


"우리 그럼 손가락으로 V 하고 '김치~~'하고 사진 찍으면 어떨까? 한쪽 눈에 V 손가락을 대면 일부러 찡긋한 것 같고 자연스러울거야. 전혀 티 안 날걸??? 어때?"

"으앙~~~~~싫어~~~~~"


"아빠도 어릴 때 이런 적 있었어~~~ 그때 어땠냐면~ (하며 얘기를 풀기 시작. 지어낸 일 같지만 마음속으로 노력상 수여)"


"으앙~~~~~ 나 어떡해~~~ 난 망했어!!!!"


어떤 방법도 소용없었다. 아이 입에서 결국 망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근데 엄마가 봐도 정말 공감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봐도 진짜 그런 것 같아ㅜㅜ'라고 공감해 줄 수도 없었다. 아침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난감한 상황에서 나는 아이의 감정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어떤 해결이나 제안을 하지 않고 아이의 감정을 따라갔다. 속상하고 슬픈 마음을 바라보며 같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따라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아이의 태도에 전혀 변화가 없어 보였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울음을 사그러트리며 말한다.


"흠~!! 모기 때문에 눈이 이게 뭐야! 그럼 나 이제 잘 때 모기패치 붙여야겠다. 모기 패치 어딨지?"


감정이 수그러들더니 내가 생각지 못한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드디어 울음보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대비와 해결로 방향이 바뀐 것이다. 부모가 옆에서 말할 때는 아무 효과가 없었는데 본인의 감정을 다 표현해 내고 그에 수긍해주기만 했는데, 알아서 솔루션을 내며 다짐을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감정 공감의 힘인가? 얼떨결에 난감한 상황에서 공감의 힘이 발휘된 것 같다.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하라고 했는데,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그 모습까지 마주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이는 다행히 유치원에서 즐겁게 생일파티를 하고, 집에 올 때는 한아름 선물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왔다. 눈의 붓기도 어느새 감정과 함께 사그라들었는지 절반 이상 부기가 빠지며 훌훌 날아가주었다.


최근 감정에 대해 다각도로 접하게 되었다. 명상, 마음관리, 육아 전문가, 육아서, 전문 상담가, 건강 관련 정보들에도 감정을 핵심으로 다루고 있었다. 감정을 다뤄주지 않으면 꾹꾹 쌓여서 화산처럼 폭발하거나, 몸에 쌓여서 질병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표현하고 알아차리면, 그 감정은 어느새 스쳐가는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스르르 사라진다고 했다. 이를 양육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의 감정이나 기분을 엄마가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지가 아이가 행복한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영역이었다. 앞으로 수많은 상황을 마주할 아이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감정 바라보기에 부족했던 엄마였는데 앞으로 더욱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엄마와 아내가 되어야겠다. 물론 나 자신의 감정부터 바라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할머니는 거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