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도 잘해야 한다.'
는 말이 있죠. 하지만 이별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의 노력만으로는 아름다운 이별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현실은 엉망진창인 이별이 대부분이죠. 카톡만 툭 보내는 진중하지 않은 이별, 최소한의 존중도 배려도 없는 이별, 혹은 결말을 숨긴 영화처럼 알쏭달쏭해서 나를 탐정으로 만드는 이별들.. 추억이라 부르기도 허망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빨리 극복하고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어 집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별한 나의 마음과 지난 추억을 쓰레기통에 버리듯 내팽개쳐선 안됩니다. 상대방이 존중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소중하고 유일한 마음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별을 건강하게 극복해 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더 멋진 나의 외모와 능력, 더 멋진 연인을 데려와서 채우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내 마음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가장 구질구질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반짝이는 것을 가져와서 가리고, 외면하고, 없애고픈 당신의 부분은 무엇인가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에 담아 묻어버린 그 부분 말입니다.
상처도 많고, 그리운 것도 많은 추억 속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내 마음은 왜 그곳에 있었을까요? 이전 글에서 결핍이 욕구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린 연애를 통해 마음의 허전한 곳을 채웁니다. 그리고 그 허전함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서 머리와 충돌하곤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마음은 이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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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마음 한켠에 허전한 구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고 다양한 방식들로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알랭 드 보통이 말하길, 우리가 예술을 선호하는 과정에서도 '내 삶의 결핍된 것'을 예술 작품으로부터 충족시키는 만족을 얻고자 한다고 합니다.
연애를 통해 마음을 채우는 방식은 참 다양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경제적인 불안감 때문에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려 했나요? 그 불안감 때문에 아마도 관계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어떤 부분을 감내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은 마음이 이끌리지 않는 걸 알면서도 진심을 외면했을 수 있죠. 경제적 불안감은 사실 삶, 혹은 나의 유능감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건 매우 피상적인 표현입니다. 돈이란 것은 상징적입니다. It, that과 같은 '가주어'와 같습니다. 돈이라는 가주어의 진짜 주어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지난날 겪어온 지난한 가족 갈등이거나, 외로움, 창피와 수치심일 수도 있죠. 그러한 모든 판도라의 상자를 덮어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정하고, 변화하며, 어떠한 재난적 사건 앞에서 무력합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느낌이 필요했나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은 참 중요하죠. 하지만 그 마음이 '강박'이 된다면 '언제나 내 편이어야만 해'라는 신념이 됩니다. 그리고 결속을 중요시한다면, 조금의 갈등도 문제로 여겼을 거예요. 언제나 우리 둘의 마음이 같았으면 좋겠는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다거나, 나와 다른 것을 좋아한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연애에서 다름을 존중하며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와 상대방이 항상 같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다름'을 고쳐야 할 문제로만 여기게 됩니다. 항상 내 말에 동의해 주기를,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 주기를, 우리들의 마음이 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혼자' 있음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시작되곤 합니다. 정말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혼자 살아가는 불안감부터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확인이 필요했나요? 어떤 부부를 볼 때, 그중 한 사람을 '부처'이라거나 '천사'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죠. 왜 그렇게 착하고 희생적인 사람과 어딘가 부족하고 이기적인 듯한 사람이 함께 살아갈까요? 흔히 자기애적 성격장애, 혹은 경계선 성격장애를 절대 연애해선 안될 대상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항상 그러한 사람들과 연애하는 사람의 유형 또한 정해져 있습니다. 제멋대로이고 타인으로부터 채움 받으려는 사람 곁에서 끝없이 베풀며 머무는 사람. 바로 그 베풂을 통해서 누군가를 돕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강렬한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잘 이끌리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할 '거리'가 없으니까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존재할 때 비로소 나의 역할이 생기고 존재할 이유가 생깁니다. 내가 너무 희생적인 연애를 반복한다면, 나는 절대로 나쁜 사람이나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이별을 진짜로 극복한다는 건
이처럼 내 마음의 근본적인 욕구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연애하던 대상이 너무나 소중했고, 이별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은, 지난 연애에서 나의 근본적 욕구가 채워지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심리상담에서 추억을 탐색해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나면, 그 허전한 구멍을 건강하게 메꿔나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불안했다면 삶과 스스로를 믿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할 것이고, 혼자가 되는 두려움이 있다면 홀로서기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타인으로부터 증명 받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도 필요하죠.
그래서 심리상담에 올 정도로 아픈 이별이라면, 삶에서 자주 찾아오지 않을 기회입니다. 마음을 근본적으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이죠. 건강한 사람이 술이나 담배를 끊기란 정말 어렵지만, 병에 걸려 통증이 찾아 오면 곧 그 고통이 건강해질 의지가 되어 줍니다. 암을 치유한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암을 통해 삶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몸이나 마음은 늘 그러한 치유의 신호들을 보냅니다. 너무 바빠서, 이루고픈 목표에 대한 조급함이 앞서서, 챙겨야 할 가족이 있어서, 신호들을 외면하고 살아갈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