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수에도 너무 많이 미안해하고, 타인에게 작은 잘못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주변에 있으신가요? 혹은 내 이야기인가요?
미안함을 자주 표현하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심지어 그 사람 잘못도 아닌데도 습관이 튀어나오듯 미안하다며 사과하기도 하죠. 그 이유는 피하고픈 '마음의 상태'를 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두렵고 불쾌한 감정이 있고, 그 상태를 피하고 싶어 하는데요. 미안함을 자주 표현하는 사람에게는 '죄책감'이 바로 그 상태입니다. 작은 일에도 크게 미안해하는 것은 죄책감을 느끼는 상태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게 가장 괴롭기 때문에 마치 '미안해'라는 지우개로 죄책감을 지우려는 듯 반복해서 사과하고, 사과합니다.
죄책감을 피하고 싶은 건, 반대로 '잘못 없는, 타인에게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렇지 못한 순간들, 즉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되는, '죄책감'이 너무 괴로운 것이죠. 어떤 심리상담에선 이것을 '핵심 감정이 죄책감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죄책감은 심리상담소에서 자주 만나는 주제입니다.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상담에서 상담사는 죄책감이 형성된 원인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시작합니다. 모든 감정은 내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 혹은 필요했던 것입니다. 생존이란 단어를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칭찬받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물리적이 아닌 일종의 사회적 생존이죠. 그러니 우리는 이 사람의 삶에서 죄책감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시절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때 그 어린 날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어린 날의 마음으로 공감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과, 그날의 감정을 지금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은 굉장히 다릅니다. 이것이 혼자서 어린 시절을 아무리 복기해 봐도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며, 심리상담사들이 열심히 훈련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억은 누구나 복기할 수 있지만, 그날의 감정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두렵고, 어쩌면 삶에서 가장 피하고픈 상처이며, 나라는 사람에 관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웠던 감정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심리상담에서는 '재경험'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어린 시절 놀이터에 갔더니 기억 속의 그것보다 훨씬 작아져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감정을 꺼내 활성화시켜 보면, 이제는 나에게 커다란 놀이터가 아니란 걸 몸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을 심리상담사와 함께 연습하기도 하고요. 재경험은 보통 상담을 5회 내외로 짧게 받는 동안에는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재경험을 할 만큼 상담사에 대한 신뢰도 쌓여야 하고, 이후 다시 안정감을 회복시킬 수 있으려면 상담사도 내담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 있어야 때문이죠.
죄책감이 시작되는 곳은 주로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형제자매로부터, 학창 시절 친구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랑받고, 소속감을 느끼고, 우리는 함께라는 결속을 단단히 하고 싶었기에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려고 애쓰며,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상대방이 불쾌할 것 같은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내가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던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 반복된 경험 속에서 성격으로 굳어지고, 감정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성장하며 그것이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방에게 그다지도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할 수도 있음을 깨닫기도 하죠. 상대방이 바란 건 칭찬이나 사랑, 고마움이었는데, 나는 계속 미안함만을 표현해서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안함을 표현하는 동안에 상대방은 스스로에 대해 좋은 기분을 느낄까요? 누군가 당신에게 너무 과도하게 미안해할 때, 혹시 뭔지 모를 불편함을 느껴본 적 없으신가요? 상대방이 너무 미안해하면 내가 제대로 화를 낼 수도 없고, 나를 너무 가혹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과도한 미안함을 표현할 때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아주 관용적이며 타인에게는 가혹한, 타인과 나를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구인데도 마치 윗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요. 그런 관계를 볼 때, 그 친구가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면의 어떤 면에서는 상부상조하는 사이일 수도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죄책감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계속 안고 있다 보면, 마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에 더더욱 코끼리만 생각이 나듯, 생각의 목표물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눈앞의 현실에는 누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서 있나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정말로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죄책감을 재경험하고 그 두려움을 조금씩 가라앉히고,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이 죄책감이란 코끼리를 목표물에서 지우는 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마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