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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an 19. 2023

엄마가 선물해 준 가장 특별한 1초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몇 주 전 맞이했던 생일날 새벽, 12시가 되자 엄마는 나를 꼭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쑥스럽고도 듣기 좋은 말에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도 나 낳아줘서 고마워~! 나 낳느라 고생했어!"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 벅차게 따뜻하고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말 같다. 때로는 보잘것없다고 느꼈고, 때로는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긴 할까?라는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기도 했던. 나를 사랑하기 위해 마주했던 많은 방황의 순간들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 말이었다.


몇 달 전, 동생과 함께 봤던 '브로커'라는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 전개, 재미 모든 것을 떠나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한마디는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건넸던 '00아,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가 영화의 정체성이 되어 기억에 자리 잡아버릴 만큼 나에게는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인사가 깊은 여운으로 남겨졌다. 꽤 한참 동안 그 의미에 대해서 곱씹었었는데, 이렇게 엄마에게 두 귀로 직접 들으니 그 소중한 의미를 더욱 천천히 곱씹어 남기고자 노트북을 켰다.


참 예쁜 말들만 조합되어 생긴 예쁜 문장이다. 내 이름, '태어나다''고맙다'를 합친 문장. 내 인생에 들어와 주어서 고맙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존재감에 있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내가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된 느낌이 드는 따스한 말이다.


태어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시간, 단 1초. 자주 건네는 말은 아니기에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가장 특별한 1초를 선물하는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그날 엄마가 내게 선물한 특별한 1초는 2023년 내가 이뤄야 할 새로운 목표를 낳았다.


'나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좀 더 사랑해 주기'


2023년 1월 달력을 펼치며 적었던 나를 위한 다짐






어쩌면 나는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출생의 비밀...이랄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아득한 날, 아빠는 내가 자칫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뻔했다며 나의 탄생 스토리를 말씀해 주셨다. 나를 임신했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 내가 사는 동네는 그리 발전한 동네가 아니었었다고 한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집 앞에 있는 작은 산부인과를 방문했었는데, 의사는 임신을 알게 되기 전 약을 복용했다는 이유로 나를 지우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아기를 지워야 한다고 말하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그것도 첫 아이인데 말이다. 절대 못 지운다고 엉엉 울며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좀 더 큰 산부인과에 가서 진단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행히 다른 병원에서는 약을 복용했던 시기가 임신 가능 주기와는 겹치지 않았던 데다가 아직 아기가 제대로 형성된 상태도 아니라 지울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고, 그렇게 나는 무사히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때 그 돌파리 말만 믿고 너를 지웠으면 우리 딸은 세상에 없었을 거야'라고 말하는 아빠는 잠시 그때의 감정을 되감듯 추억에 잠긴 얼굴이었다. 나름 아찔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엄마가 나에게 건넨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말이 더욱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울렸다.


정말 내가 이 세상에 없었다면, 그랬다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시 쓰였을까. 지금껏 내가 적어온 인생의 날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아니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이야기의 시작조차 없었을 것이다. 또,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인생의 한 페이지 정도, 반의 반 정도라도 다르게 쓰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까지도 그려가고 있는 인생이라는 이야기책이 통째로 바뀌게 될 만큼 나는 꽤 중요한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내가 없는 세상,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의 기억이 없는 세상. 그 공허한 상상은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도,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가족들에게도, 나라는 사람 자체를 아껴주는 남자친구에게도 나는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모든 사람들 역시 나에게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연결된 소중한 인연들. 그들이 나를 아껴주고 소중하게 대해주는 만큼 나도 나를 더욱 아껴주고 그 진정한 사랑을 남에게도 베풀어야만 마땅했다.






'나부터 사랑해야 남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떤 마음으로 남에게도 진실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하듯 나는 내면의 근육을 기르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자신있게 행동하지 못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나치게 걱정하고,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고 연연하는 내 모습이 싫을 때도 많았다. 나는 왜 재치가 없는 성격일까? 나는 왜 뭘 해도 중간인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를 향한 의심과 억측들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결국,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든 셈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선물해 준 특별한 1초로 인해 나는 그 의미를 바로잡았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겪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들이라는 것. 그런 귀한 존재를 깎아내리는 혼자만의 블랙홀에 빠지지 말 것. 지금껏 겪어왔던 의심의 시간들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야심 차게 달력에 적으며 마음에 새긴 이 다짐이 올해의 나를 한 발짝 더 성장시킬 수 있길 바란다.


"예령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런 나를 있게 한 엄마에게 남기는 P.S

엄마! 내가 엄마 딸이라 기뻐 :) 낳아줘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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