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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ug 20. 2023

지겨운 하루도 쌓이면 인생이 된다

 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겠지만, 가끔은 반복적인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때론 야근을 하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내가 하려는 것을 하려고 들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혹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걸 이룬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때의 나는 명사로 형용할 수 있는 꿈을 꿨다. 이를테면 돈을 대단히 많이 버는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어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명사로써의 꿈은, 마치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날의 모든 행위들은 미래의 나를 위한 일종의 자양분 같은 것이었다. 오늘 하루 열심히 다져놔야 하루빨리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명사로 명명되는 꿈은 입 밖으로 내뱉기도 쉬워서, 나는 곧잘 꿈을 내뱉곤 했다. 지겹게도 말이다.

 한 번은 이런 반복적인 삶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열심히 살아봤자, 삶은 변화되는 것도 없는데 왜 굳이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지를. 세상은 내가 변화하는 만큼 변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일을 하면, 내가 버는 수입만큼 물가도 올랐다. 경력을 많이 쌓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으나, 세상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처럼 노력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멈춰서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명사로 명명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길을 택해야만 했다. 사람들이 가는 길, 혹은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가는 길. 그 길에는 수많은 이들의 헐벗은 영혼들이 죽어 있었다. 수없이 갈린 열정과 마음들이 전쟁이 끝난 황폐한 도시의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내 꿈을 이뤄내기 위해 억척스럽게 그들의 몸을 밟고 나아갔다. 이미 나도 숨을 헐떡이며 죽기 직전이었는데도 말이다.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인생에서 소중하게 생각했던 미래의 가치를 이루기 위해 오늘날의 나를 희생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폐허가 된 현실 위에 서서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로 다짐한다. 그래서 미래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수고는 접어두려 한다. 그렇다면 이 길을 걸어가는 여정에 수많은 이들의 버려진 마음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니까.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타인과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또는 누군가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바라보는 일도 아니다. 어쩌면 멀리 돌아가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정해진 목표가 없기에, 성공의 여정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명사로 뚜렷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꿈은 없지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 아가다 보면 동사로 쓰이는 꿈을 만들 수 있게 될 거라고. 나는 그저 나로서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지금의 반복적인 삶도 지겹다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오늘이 쌓여 내일이 될 테고, 내일이 쌓여 나도 모르는 미래가 그려지게 될 테니까. 그런 마음이라면, 나는 매일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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