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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Feb 08. 2024

아프지 않게 넘어지기


 어떤 유혹은 울음을 닮아서 긴 여운을 남긴다. 너무 많은 날을 울면, 또 너무 많은 날만큼 치지는 것처럼. 나태함에 취하면 아주 오랫동안 아프다.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것을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오래 몸살을 앓는다.

 올바른 삶에 대해 하늘에 물어도 답이 돌아오지 않듯, 답은 늘 마음에 있었다.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지를 이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아는데, 그저 그 방향대로만 걸어가면 되는데, 왜 우리는 걸핏하면 삐끗거리고 넘어질까? 한두 번 넘어져본 것도 아닌데, 이젠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쓰디쓴 인내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달달한 결과가 확실히 보장된다면, 누구든 인내하고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십 분만 기다리면 눈앞에 둔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믿는 어린 아이처럼, 그런 일방적인 순수함을 지켜낼 수는 없을까.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단단한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걸까. 그럴 때 나는 지금 내가 게으르고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내가 망각했던 한 가지를 떠올린다. 나는 사실 아주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한때 나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저들은 자신의 계획과 다짐을 밀어붙이며 살아가는 걸까? 생각해 보면 그 안에는 '확신'이라는 게 있었다.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이들의 내면이 얼마나 불안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흔들리면서도 부지런히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건, 목표에 대한 확신, 반드시 달콤한 초콜릿을 입 안에 넣고 말겠다는 완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음으로는 걱정이 아닌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세상에서는 단순히 '걱정'을 지워낼 순 없었다. 고민을 하면 걱정이 따라왔고, 걱정을 하면 늘 불안했다. 그렇게 불안하기 시작하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선택과 계획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그려보고, 끊임없이 깊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왜 하느냐, 싶을 정도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실패와 성공, 둘 중 하나 100%를 보장할 수 없다면, 그래도 최대한 실패를 피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게 내가 끊임없이 생각을 늘어놓는 이유였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단 한 가지 목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수 십 개의 실패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반드시 목표 지점까지 걸어가겠다는 마음이 아닌, 넘어져도 아프지 않게 넘어지는 방법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야 나는 나의 수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미련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 또한 살면서 마음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들끓기도 했고, 삶이라는 바다 위에 띄운 부표를 바라보며 숨이 찰 때까지 헤엄쳐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턱밑까지 숨이 차 죽기 직전까지 뛰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가 아닌 눈앞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확신은 찾아온 기회를 낚아챘을 때 더욱더 단단해졌으니까.

 나약한 이의 마음은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쉽게 흔들린다. 알아야 할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들린다는 것이다.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잡고 있는 것,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것,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불같이 뛰어드는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 생각보다 생은 길고, 우리는 앞으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테니까.

 아프지 않게 쓰러지는 법을 배우면,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다. 때론 그런 마음가짐이, 목적지에 천천히 도달할지언정, 오히려 더 멀리 오래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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