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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21. 2024

더위

 자신을 잊지 말라는 말만큼 강력한 족쇄가 있을까. 언젠가 열렬히 사랑했던 이의 한마디는 가슴에 사슬을 채우고, 앞으로의 나의 하루들을 실험적으로 보내게 만들었다. 내가 당신을 언제까지 그리워할 수 있을까, 마음은 얼마큼 병약해져 갈까, 또 언제까지 당신을 기억할 수 있을까. 당신과 함께 쌓아 올린 추억이 가슴 아프지 않게 되기까지, 나의 하루들은 또 얼마나 많이 죽어야 하는지를 나는 차마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낙화의 계절은 갔고, 오늘날의 온도는 오직 따가운 태양열뿐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의 눈살에 애써 손부채질을 하며 고개를 숙인다. 가슴 깊숙이 차오른 울음은, 이토록 무더운 더위에도 증발하지 않는가 보다. 손부채질을 했다가 턱밑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가, 난리 법석을 피우고 나서야 저무는 노을을 발견했다.

 이별은 당신이 좋아했던 윤슬만큼 찬란하지 않았고, 되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고요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여름날의 바다는 포근하기보다는 오히려 무덥기만 했다. 오직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당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던 나의 계절 여름엔 너무 더워 죽을 것 같았는데, 또 겪어보니 손부채질만으로도 살 수 있었다.

 후텁지근한 여름 하늘에 뻐끔뻐끔 입을 벌린다. 더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한껏 한숨으로 내쉰다. 언젠가 당신과 나는 여름날처럼 뜨거웠는데, 우리의 계절은 어쩐지 정반대로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에게도 사계가 있다면 가을쯤에 있을까, 겨울쯤에 있을까. 허공에 손을 뻗어 햇살을 가려보고, 손으로 윤슬을 한 움큼 집어 본다.

 여름이 오면 그래도 당신을 덮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의 오만이었나? 잊지 말아 달라는 당신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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