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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31. 2024

간사하거나 오만하거나


 사랑이라는 것이 참으로 간사해서, 시간이 흐르면 금세 잊히기도 한다. 또는 나의 마음이 오만하여, 시간이 흐르면 잊힐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사실 어떤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는 없다. 스스로 직접 이별이라는 죽음에 영혼을 뉘이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흔히 이별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새로운 인연, 뜨거운 사랑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두 눈을 밝혔지만, 어쩐지 헤어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다 시들어져 버린 사랑이라서 그런가. 그래서 나의 지친 마음이 타인의 눈에도 잘 비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닳아지기 시작했다. 해풍에 녹슬기 시작한 쇳덩이처럼, 어쩌면 조금씩 산화되고 볼품없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뼈아픈 이별의 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미화되어, 자꾸만 지난 사랑에게 손을 뻗고만 싶어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됨을 알면서도, 자꾸만 그가 생각나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 완벽하게 그를 내 가슴에서 도려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했던 그이가 일기장을 염탐할까 겁이 나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눈물은 시간이라는 바람 앞에 증발되어 갔다. 이제 울지 않고 덤덤하게 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신이 선물한 망각이라는 축복이 아닐까. 잊히는 것은 축복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했던 순간만을 추억할 수 있으니까.

 다시 만날 용기 따위 이제 더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죽어 없어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이 나와 같을까? 그도 아직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럼 내가 손을 뻗었을 때 그는 기꺼이 나의 손을 잡아줄까? 신이 선물한 망각은, 오직 나에게만 내려진 축복은 아니었다. 내가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한들, 내가 손을 뻗었을 때 그가 그 손을 뿌리치면 그만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일방적일 수도 없고, 미련이 남았다고 해서 이뤄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단지 그리움만으로 지난 사랑을 붙잡기에는, 그동안 너무도 많은 하루들이 죽어 없어졌다.

 또는, 또다시 힘겨운 감정소모와 가슴앓이에, 불구덩이 속으로 영혼을 내버려 두기 싫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이루어질 수 없는, 혹은 반복되는 이별에 지친 사랑 앞에 더 이상 애정은 없었다. 애틋하게 사랑함과 동시에 상황을 증오했고, 증오하면서도 또 가슴 아프게 사랑을 했다. 똑같은 아픔, 똑같은 이별을 경험하기 싫어 놓은 손 아니었던가. 어쩌면 그도 이런 반복되는 상황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가 혹은 내가 사랑을 잊었는지, 지키고 있는지, 멈춰서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별을 했다는 것이다. 이 긴 이별의 꼬리는 하룻밤을 보낼 때마다 길고 긴 그림자를 그려, 보이지 않는 나의 뒤편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하루 종일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뭔가 골똘히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사실 고민 같은 것도, 걱정 같은 것도 없다. 그냥 단지, 그리움이라는 긴 그림자가 발 뒤꿈치에 들러붙어, 자꾸만 신경 쓰이게 만든다는 것뿐이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리운 이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직도 그는 날 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이미 수일 전에 매듭지어진 감정이다. 이제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나는 다시 이 넓은 바다를 홀로 표류하며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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