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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13. 2024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


 나는 돌풍을 밀고 힘차게 날아가는 바다새가 되어 일평생 진정한 사랑을 찾아다녔다. 모자람 없이 무럭무럭 자라던 마음이 깊은 고민을 낳고, 고민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리고 또 사랑을 꿈꿨다. 그러나 나는 사랑 안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을 어느 찬란한 날에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겠노라 다짐했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껏 휘둘리고 망가져 분해돼버린 사랑. 목적지 없이 공기 중에 부유하며 떠다니는 영혼. 무거워진 약속과 진심은 심연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우울'이라는 대서양의 바다를 지나 어느 동그란 섬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 섬의 이름을 '사랑'이라고 지었다. 사랑은 그렇게 우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바닷가로 첨벙 빠져버릴 수도 있는, 해변가 없이 낭떠러지 물길로 직결되는 바위섬 하나. 나는 바위섬에 앉아 긴 비행에 지친 날개를 씻고,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바위 위에 몸을 뉘인 채 일광욕을 즐겼다. 그렇게 조금씩, 잊고 있었던 사랑을 다시, 꿈꾸게 되었나 보다.

 '사랑'이 심해로 가라앉기 시작하던 날, 나는 들판에 피어난 사랑의 꽃봉오리들을 모조리 뜯어다 해체해 놓고 주저앉아 울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이 두려워, 사랑으로부터 영영 달아나고만 싶었다. 모든 사랑엔 가슴 아픈 이별이 있었고, 나는 그 이별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스쳐간 수많은 사랑 중에 진정 잊지 못할 사랑은 손에 꼽았는데, 우울감에 잠겨 들기 시작했을 때는 손에 꼽힐 사랑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가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울적하고 싶지 않았다. 우울감에 허덕이며 힘겹게 숨을 쉬는 것도 힘에 부쳤다.




 나는 사랑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인지를 늘 의심하며 살았다. 그 의심의 싹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갈구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고, 힘듦을 내색하지 않으며, 나 자신을 버려도 되는 물건 따위로 취급했다. 감정의 변두리로 힘겹게 밀어내면서, 그렇게 감정에 휘말리지 않겠노라 무수히 다짐하며, 온몸과 마음을 혹사시켰다. 무기력은 침묵으로 이어졌다. 힘에 부쳐 침대에 풀썩 쓰러져도 좋았다.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늘 엉성하고 한없이 부족했던 난, 자책과 우울감으로 밤이면 울음을 터뜨리기만 했다. 울다가 정신이 혼미해지면,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했다. 이제 더는 사랑을 찾아 비행하는 일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즈음,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깨닫게 되었다. 난 내면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주 연약하고 부러지기 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정착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처럼 느껴졌다. 뜨거운 도전은 언젠가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금세 식어버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이건 단순히 열정의 여부로 판단할 수 없었다. 여유 같은 것도 아니다. 그냥 좀 지쳐서, 잠시 혼자 있고 싶은 마음. 그런데 또 어떤 날은 혼자 있기 싫은 마음. 이젠 나도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몰랐다. 하루가 힘겹다. 단지 일과를 마친 후, 그저 쓰러져 있고 싶다. 사랑도, 사람도, 감정도, 이제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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