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때 선물을 주는 이유는, 마음의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감사하거나 혹은 미안하거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갈음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언어를 이용해 진심을 덧붙였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형태 없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무수히 존재하고 있었다. 앞서 말한 마음이나 생각, 감정과 같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무형의 존재들이…. 그렇듯 인생도 그런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생도 딱히 어떤 형태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의 인생을 색깔로 표현하자면 어떤 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한참 꿈과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때는 노랑, 우울감이 짙을 때는 파랑,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어 초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태어나서 현재까지의 내 인생을 단 한 가지의 색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참으로 어렵다. 인생은 그야말로 세월에 따라, 시간에 따라, 어떤 순간에 따라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거나 가치관이 달라지기도 했으니까. 인생을 한 가지의 색깔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주변에 놓인 다양한 상황과 배경도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이 세계는 들끓는 열등감으로 인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세상으로, 온전한 나 자신의 생이 아닌 타인의 눈치 속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생각해 보면 다양한 색깔로 표현되는 내 모든 지난날들도, 온전히 나를 사랑해서 뚜벅뚜벅 걸어온 생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누군가의 기대로, 또 어떤 때는 누군가의 부담으로, 또 어떤 때는 나보다 멋지고 잘나 보이는 누군가에 대한 동경으로, 질투로, 열등감으로 살았다. 그게 오롯한 나의 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진짜 내 삶을 살고 있나?'에 대한 질문조차 떠올리지 않은 채, 이 세계에 섞여 들어 살아왔다. 그렇게 사는 게 너무도 당연한 세계였다.
그런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했다. 어떤 지역의 독립단편영화제에 다녀왔을 무렵이었다. 감독이 자신의 가치관과 예술적 혼을 영화라는 하나의 장르에 담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어떤 이는 생업을 하면서, 또 어떤 이는 온전히 영화에 몰입하여 인생을 살고 있었다. 제작자가 있고, 배우가 있고, 관객이 있는 그 자리에는 다양한 인생들이 앉아 있었다. 인생들이 쏟아낸 말들 중에는 정말 현실적인 대화도 있었고, 또는 꿈에 부푼 말랑말랑한 대화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틀리다"와 같은 대답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도 인정받고, 이해할 수 있는, 다름을 인정하는 아름다운 세계였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틀리다"의 생각들이 만연했다.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사원들은, 정규직만이 옳은 삶이라 생각하며 부서지듯 달렸다. 왜 정규직이 되지 못할까 불안해하고, 괴로워했다. 주변인들은 오직 정규직만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한 직장이 없다고 말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어쨌든 안정적인 게 중요한 거니까, 계약직 사원들에 대한 모든 대화는 오직 "안정된 삶"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 영화의 세계로 건너가서, 어떤 세계에서는 "정답"이 없었다. 정답이 없으니 틀린 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도 괜찮았다. 그 세계에선 오직 "나"만이 보였다.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대로 살았다. 그 다양한 방식들이 모여, 오히려 인생들이 모인 세계는 더욱 풍족해 보였다. 이것 아니면 이것, 정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아닌, 내가 걸어가면 정답인 세상. 나는 거기서 내가 그동안 편협한 세상에서, 두 개의 답지를 쥐고서, 스스로 마음을 괴롭게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빠듯한 인생을 사느라
위로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되었다.
-책 <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 중에서
인생이 만약 눈에 보이는 형태였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더 열렬히 서로가 생각하는 게 정답이라고 떠들어댔을까, 아니면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했을까? 나는 가끔, 인생이 외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이기에 관대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형태 또한 자유로울 수 있고, 형체가 없는 만큼 어떻게 살아도 괜찮은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을 사랑하고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결코 틀린 답은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서로가 가진 인생을 이해하고 사랑했으면 한다. 세상엔 어떤 한 가지 색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인생과 삶이 있고, 그 삶 속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