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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Oct 05. 2024

아빠와 통기타


 어느 평범한 주말의 오후였다. 지역의 독립영화관에서 신진영화감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던 나는, 시민들의 영상 제작 특강을 위해 특별한 동네 나들이에 나섰다. 어느 동네의 골목길을 함께 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일이었다. 처음엔 그저 강의의 연장선이라고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골목길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골목길 이곳저곳 걸으며 지난 역사와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세월이 흘러도 영원한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역의 관광 사업에 따라 후미진 곳은 화려하게 변했고, 젊은 감성을 담아 새로운 곳으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스러져가는 옛것과 옛것을 보존하기 위해 새롭게 탈바꿈한 공간에서 어색함을 느끼며, 천천히 시간을 거닐었다. 중천이었던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노을이 되었다. 붉은 노을빛을 받으며 어느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모임장인 독립영화관 감독님께서 잘 아는 곳이자, 애정하는 식당이라고 했다. 처음 마주한 식당의 외관은 허름한 여느 노포 식당과 다를 바 없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가게 벽면에는 마치 신문에서 오린 듯한 가득 잿빛 사진으로 가득 물들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낡은 테이블과 디자인이 제각각인 의자, 조금 나이 든 사람들, 가격 없이 음식 이름만 붙은 메뉴판까지 요즘엔 볼 수 없는 옛것들이 가득했다. 골목길을 걸으며 줄곧 옛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이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장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묻은 공간, 벽면에 주렁주렁 매달린 금빛 주전자들, 왁자지껄 떠들며 즐거운 흥분이 쏟아지는 곳에서 시간여행을 한 듯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 여기 사장님이 밴드부 보컬이야!

 감독님이 웃으며 남자 사장님을 소개했다. 반짝이며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남자 사장님이 당당하게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 이따가 제가 노래 불러드릴게요.

 사장님이 수줍은 인사 하며 바쁘게 식당으로 들어가셨다. 곧 노래를 불러주겠다는 사장님의 말에 모임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사장님이 통기타를 들고 오시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장님과 함께 밴드부를 하고 있다는 부원도 한 분 더 오셨다. 두 분은 테이블 바로 앞에 의자를 두고, 통기타를 안으며 자리에 앉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사장님은 능숙하게 악보를 펼쳤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들려드릴 곡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입니다.

 사장님은 능숙하게 통기타를 조율하고 사람들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잔잔한 노랫소리에 마음 한 편이 아련해지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아내분은 부엌에서 치킨을 튀기고 있었다. 가게 안에 퍼지는 고소한 치킨 튀기는 냄새와 김광석의 잔잔한 노랫소리,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까지. 오래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잔잔한 감동에 나는 마치 80년대로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작은 술집에서 통기타 연주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부엌에서 치킨을 튀기셨다. 내가 어릴 적, 어쩌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일 테다. 나는 본 적도 없는 부모님의 옛이야기지만, 아버지가 젊었을 때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세대나 삶에 대한 고난의 종류가 다르겠지만, 농도는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눈물짓던 새벽, 나는 울며 어머니께 여쭈었다.

 ⎯ 엄마, 엄마도 젊을 때 이렇게 힘들었어?

 그때 어머니는 나에게 처음으로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당신의 인생과 비교했을 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씀하시던 분이셨다. 나는 어머니 당신의 생을 생각하면, 도저히 어머니처럼 살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이사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게 가능할까? 삼십 대 중반의 엄마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며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

 언젠가 엄마가 부엌 한편에서 설거지를 하며 중얼거리셨던 패티김의 <가시나무새>. 나는 문득 엄마가 부르시는 가시나무새가 듣고 싶어졌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늦은 밤에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짝 잠에 드셨던지, 잠긴 목소리로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오늘 모임에서 보았던 모습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갑자기 아빠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어요. 어쩌면 젊었을 때의 아빠와 엄마는 그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고요. 우리 아빠 정말 고생했겠다. 정말 힘들었겠다. 우리 엄마도 정말 고생 많았다. 그래서 갑자기 아빠 목소리가 듣고 싶어 졌어요.

 아빠는 잠에 잠긴 목소리로 살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 그랬지. 예전에 아빠도 노래 불렀지.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도 목소리를 보탰다.

 ⎯ 그래도 엄마 생각하는 건 우리 큰 딸밖에 없네.

 ⎯ 엄마, 기억나? 부엌에서 엄마 설거지 할 때마다 불렀던 노래 있잖아. 패티김의 <가시나무새>

 ⎯ 글쎄, 이제 엄마는 너무 오래돼서 그 노래도 가물가물해.


 세월이란 그런 것 아닐까? 빛바래고 닳아지고 스러져도, 머릿속에 아련하게 남은 노래 가사처럼 은은하게 남아있는 것. 어쩌면 옛날의 모습들은 우리들의 가슴에서도 왜곡되고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이라도 어떤가? 지나 버린 우리의 인생, 그저 고단하지만은 않았다고, 어쩌면 찬란하고 따뜻했노라고 회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부모님과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의 지난 인생은, 후회 속에서도 아름답게 출렁이는 선율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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