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Nov 13. 2021

반성에 대하여

 무엇을 자존감이라고 할까요? 반드시 도전해야만 하는 목표가 있는데, 그걸 자신 있게 추진하지 못하는 것을 고꾸라진 자존감이라고 할까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는, 늘 후회와 반성이 뒤따랐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위선 섞인 위로와 내일의 발전을 기약할 반성은 비소가 튀어나올 만큼 우습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목표를 상기시키는 이유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기 때문이겠죠.

 반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매일 지겨울 만큼 반성 속에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행하면서 어그러진 실수는 깊은 반성의 늪에 마음을 몰아갔습니다. 반성, 다 좋습니다. 실수를 복기하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간이겠죠. 그러나 반성은 참으로 지독하게도 나 자신의 자신감을 깎아먹고 버텨갑니다. 괜찮아, 내일은 잘 해내면 되지. 그런 생각 따위, 점점 수그러지게 되고 맙니다. 그릇된 반성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성하는 태도로 삶을 살아왔습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자신이 정한 진흙탕의 기준에 젖어버린 영혼을 말끔하게 씻어내 주는 행위일 것입니다. 남들은 하지 않는 나만의 반성 시간을 가지면서, 어쩌면 남들보다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우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우쭐거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반성은, 그런 반성만으로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타임머신이 개발되어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그때만큼 잘 살 자신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성하던 날들 중 끊임없이 자행했던 자기 학대를 멈추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못해, 이런 게 부족하고, 이런 건 자신이 없어. 그런 생각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 감정의 자해를 통해 얻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혐오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의 해구 속에 영혼을 몰아넣을 뿐입니다. 

 아름다운 반성으로 씻어내기 위해서는, 자학하는 행위 그 이상의 발전이 필요합니다. 나는 못하기 때문에, 라는 서론을 굳이 보태지 않았으면 합니다. 남들의 인생과 내 인생을 비교하며 살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조금 더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자학이 깊어질 때는 차라리 다른 탓을 해버리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 상태라면 남 탓도 남 탓이 아닌 위로가 될 테니까요. 그렇게나마 자신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왜 온통 실수투성이냐고 자신의 마음에 회초리를 내리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릇된 반성의 늪에 빠질 것 같을 때는 차라리 명상을 통해 속을 비워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격해진 감정의 해일을 잠잠히 해주고, 떠오르는 사념들을 바닷물에 천천히 흘려보내길 바랍니다. 우리에게서 떠나간 그 사념은 바다 한가운데서 좌절 섞인 비명을 내지르겠지만, 당신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성 따위 하지 않고 살아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적절한 반성은 자만을 키우지 않습니다. 내일의 시간에 힘을 조금 더 보태는 것입니다. 비타민도 과하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듯 말입니다. 

 남을 사랑하기는 쉬워도, 자신을 사랑하기에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릇된 반성으로 자신을 상처 입히는 날들은 이제 고이 접어두길 바랍니다.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