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근길 방향은 늘 서쪽이었다.
언젠가부터 이른 새벽에 일어나 출근을 하기 시작했던 나는, 겨울에도 어김없이 이 시간에 눈을 떴다. 여섯 시, 아침이라고 하기엔 이르고 새벽이라고 하기엔 늦은 시각이다. 눈을 비비며 찬물로 잠을 깨고, 전날 미리 개켜놓은 옷을 입었다. 쌀쌀한 아침 공기에 옷깃을 콧등까지 쓸어 올리며 차에 올라탔다. 이른 아침이라 이 시각엔 출근하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꽤 많은 차량들이 도로 위에 줄지어 서 있었다.
해가 일찍 뜨는 여름날엔 전혀 몰랐던 풍경.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지만, 출근길이면 나는 늘 새로운 아침을 만났다. 자동차의 백미러에 비친 떠오르는 여명과 어둠을 향해 내달리는 차는, 마치 시간여행자의 운전처럼 느껴졌다. 여섯 시 사십 분 즈음, 밤새 불을 켜고 있던 가로등불빛이 자동으로 꺼지면 그 오묘한 시간여행에 좀 더 진심이 된다. 노란 헤드라인 불빛이 열정에 그득 찬 청년의 눈빛처럼 번뜩이고, 차 안의 공기는 간밤의 찬기운을 담아 쌀쌀했다.
출근길에는 어김없이 오디오북을 듣는다.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한 이유는, 바쁜 일상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늘어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듣는 책은 소설보다는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가 제격이었다. 장거리 출근길이 아니므로, 회사에 도착하면 글의 맥을 끊기 딱 좋은 구성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헤르만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을 듣고 있다. 그 에세이를 들으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삶은 다 비슷하게 느껴졌다.
겨울이 오면 지난겨울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특히 요즘 겨울 출근길엔 더더욱 그랬다. 차 안에서 듣는 오디오북, 등 뒤로 비치는 여명, 헤드라인 불빛을 켠 출근길 자동차, 지난밤의 쌀쌀한 공기를 담은 운전석. 마치 세상의 모든 공기가 날더러 과거에 머무르라는 듯, 냉한 공기를 뿜어댔다. 특히 등 뒤로 떠오른 여명이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다가오는 오늘의 아침해로부터 도망치듯, 마치 과거의 밤을 쫓아가듯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 년 전의 겨울이 떠올랐다. 일 년 전 나의 겨울은 어땠나? 그때도 나는 지난밤 어둠을 향해 액셀을 밟는 지금처럼, 과거를 향해 내달리고 있지 않았던가?
모든 삶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가끔 원하는 소망이 있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인생이 아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신이 있다면, 제발 하나만큼은 나의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랐다. 내가 열망하던 모든 것들이 바람 앞에 놓인 모래성처럼 흩어 없어지고,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 때야 허망한 여운만을 가슴에 품었다. 그런 헛헛한 마음으로 지난 사계절을 보내고, 또다시 텅 빈 겨울에 다다랐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선, 나는 지난날의 내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심도, 좀 더 열심히 살걸 그랬다는 자조 섞인 후회도 아니었다. 단지 그날의 내 모습에 대한 그리움과 처절했던 순간에 대한 안쓰러움이 잔존해 있을 뿐이었다.
후회를 했다면, 어쩌면 선택에 대한 후회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아주 작은 선택으로 인해 초래한 지금의 괴로움을 후회하곤 했다.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란 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 선택으로 인해 초래하게 될 결과와 그 결과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후회를 한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삶을 배웠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면 되니까. 그러나 그런 마음에도 마음 한 편이 헛헛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겨울, 매일 아침 이 계절의 출근길엔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거스를 수 없는 오늘의 아침해와, 밝아오는 여명에 물들어가는 어젯밤과 그 사이 운전대를 쥐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과거를 향해 발버둥 치는 모습 같다는 생각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시간이라는 것도 그런 것일 테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오늘의 태양이 어제의 태양이 되고, 또다시 새로운 밤을 맞이하게 되듯, 인생은 운명처럼 순리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흘러가버린 시간을 증오하지 말자, 애정으로 불을 밝히면 삶은 더 아침 햇살처럼 찬란해질지도 모른다. 운명에 순응하고, 삶을 사랑하며, 과거의 나 자신을 용서하자. 용서는 삶을 사랑하는 또 다른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