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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Apr 10. 2023

존 윅#1


<존 윅 4>는 꽉 들어차다 못해 차고 흘러넘치는 온갖 액션의 총집합판이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의 영화라는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육체에 내재한 힘을 극한으로 전시하듯 펼쳐놓는 영화에서 오히려 육체와 분리되는 듯한 얼굴의 아우라가 더 진하게 느껴졌달까. 그러니까 내게 <존 윅 4>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요소들은, 자연광뿐 아니라 형형색색의 빛을 받아내는 존재의 얼굴이다.


코지로 분한 사나다 히로유키와 케인 역의 견자단 등 주요 출연진들의 얼굴은 거의 모든 러닝타임 내내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줄기로 가득 차 있다. 빛을 담아내는 건 키아누 리브스도 예외는 아니다. 태양빛이 존 윅의 얼굴에 스며든다. 이 장면을 실제 시간대에 맞춰 로케이션으로 찍었을지, 크로마키 천에 의지해서 찍었을지 확언할 수 없다. 아니 나는 그 빛이 생성된 경로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그 빛을 받아내는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우리 눈앞에 놓여 있는 건 그간의 오랜 세월이 쌓여 있는 존 윅, 아니 키아누 리브스, 아니 어쩌면 그 중간 어딘가에 놓인 존재다.


통상 배우의 얼굴에서 시간의 궤적이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키아누 리브스가 58세로 상당한 고령의 배우라는 점에서 그간의 활동 속 세월이 그의 용모에 자연스레 반영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존 윅'이라는 존재와 연동될 때의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은 그렇게 숫자 놀음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기이한 텐션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예시를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탑건: 매버릭' 속 톰 크루즈의 얼굴에서 나는 비슷한 아우라를 느꼈다. 매버릭, 아니 에단 헌트, 아니 톰 크루즈 그 어딘가를 마구 오가면서 꿈틀대는 그 무언가 말이다.


그러니까 <존 윅 4>도 존 윅, 아니 키아누 리브스, 아니 어쩌면 네오까지도 품을 수 있는 그 진동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데에 성공한 셈이다. 관객은 키아누 리브스의 굴곡진 배우 커리어에 대해 각자의 감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가 고령의 나이에도 대역을 최소화하면서 액션을 소화해냈다는 정보를 사전에 찾아보기도 한다. 키아누 리브스가 없이 '존 윅'은 존립할 수 없다.


<존 윅>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관객들 중 일부는 눈에 띄는 반응을 내놓는다. "존 윅 영화 찍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네" "키아누 리브스가 저 나이에도 저렇게 치열하게 총질을 해대다니". 그러니까 중요한 건, 존 윅과 키아누 리브스 간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느샌가 존 윅을 키아누 리브스로, 키아누 리브스를 존 윅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치환하고 있다. 마치 에단 헌트와 톰 크루즈를 동일시하듯 말이다. 존 윅에게 마침내 안식을 선사하는 본편의 서사 구조가 그렇기에 관객들의 내면에 와닿을 수 있다. 우리는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의 여정을 함께 해왔고 그 여정은 각기 다른 존재가 영위하는 것처럼 여러 갈래로 분화된 듯 보였지만 사실은 한 줄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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