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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Aug 14. 2023

<밀수>, 연결의 감각

<밀수>는 70년대 대한민국의 어느 한 귀퉁이를 잘라낸 뒤 오롯이 보존하려는 데엔 관심이 없다. 다시 말해 <밀수>에서 재현과 고증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대놓고 군천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당대 시공간에 접합해서 펼쳐 놓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밀수>는 그저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리듬을 머금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 리듬은 무엇인가? 영화의 전개 속도나 서사 배치의 밀도를 아우르는 호흡의 차원에서도 가능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리듬, 그러니까 음악의 영역에서의 리듬 역시 포함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밀수>가 내화면과 외화면을 오가는 '음악' 그 자체를 동력 삼는 <베이비 드라이버> 같은 영화들보다도 더 음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시종 흥미를 자아낸다.

이때 <밀수>는 주요 넘버들을 외화면에서부터 끌어오는 걸 넘어 내부 세계관 속에서도 적극 활용한다. 극 중 인물들이 당대 히트곡,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를테면 최헌의 '앵두'는 춘자와 진숙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기능하면서도 영화와 현실을 연결하기도 한다. '앵두'가 발매될 즈음 10, 20대 속 청춘을 지나던 관객들이나 그 곡과 특별한 사연으로 얽혀 있는 관객들이라면 해수면 너머 뉘엿뉘엿 지고 있는 노을을 보며 회한과 애상에 갇혀 '앵두'를 구슬프게 뽑아내는 진숙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더 잘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연결의 감각은, <밀수>라는 영화 속 세계의 지속 가능성이나 존립 여부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따져봤을 때는 크게 의미가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앵두'가 선택된 이유는, 단지 극중 배경 설정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 <밀수>가 배경으로 특정한 197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어딘가라는 설정이, 그들을 '앵두'를 비롯한 당대 히트곡, 유행가요들과 연결해 줬을 뿐이다. 80년대였다면 또 달랐을 테고, 현대물이었다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을 테다.

왕가위의 <중경삼림> 속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철저히 극중 세계 속 CD에서만 흘러나왔기 때문에 관객들은 해당 넘버를 스크린 외부에서 흘러온 방문객이 아닌, 두 사람의 서사를 매만지는 조력자로만 여겼다. 그러니까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관객들의 개입이 허용되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 홍콩 어딘가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관계를 맺는 남녀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역할에만 충실했던 셈이다. 하지만 <밀수>는 그런 인과율을 구축하는 데에는 딱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밀수>는 오프닝부터 '앵두'가 삽입곡이라는 티를 팍팍 내면서 70년대 유행가 넘버들을 극의 동력원으로 삼겠다는 취지를 은연중에 표출한다. 애초에 <밀수>의 넘버들은 스크린을 매개로 하는 경계 놀음이 없다면 존재 의의를 획득할 수 없는 셈이다. 이때 극중 인물들과 관객들이 삽입곡을 두고 어떤 연결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일이 <밀수>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개의 숏이다. 춘자로 분한 김혜수와 진숙으로 분한 염정아가 각각 '앵두'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영화에 함께 담겨 있다. 이로 인해 '앵두'는 극중 인물들의 감정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가늠해 보는 척도가 된다. 두 사람은 떨어져 있지만, 구슬픈 흥얼거림이 공통분모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공유 지점을 이리저리 굴려볼 수 있는 기회는 우선 관객에게만 주어진다. 춘자와 진숙은 각자가 '앵두'를 무의식중에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밀수>에서 두 사람이 함께 '앵두'를 듣거나 부르면서 묻어나는 순간보다도, 두 사람이 다른 숏에 담긴 분열의 상태에서 '앵두'가 관객을 매개로 다시 두 사람을 이어줄 때 느껴지는 파급력이 더 선명해진다. 이것이 <밀수>에 내재한 독특한 리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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