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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영화

<은빛살구>가 인물을 존중하는 방법

by 드플레

<은빛살구>는 인물들의 미래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교두보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운명을 가늠해볼 시도조차 버거워하는 비극일 뿐이다. 우리는 영화가 선택한 형식에서 이 비극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카메라 운용을 살펴 보자. 극의 초반부에 정서가 입주할 아파트나 벌교횟집에 들어갈 때, 카메라는 절대 정서에 앞서지 않는다. 정서의 뒤에서 공간을 바라보는 이의 뒷모습을 응시할 뿐, 정서의 시선이 가닿는 자리마다 뒤따라 시선을 옮길 뿐이다. 이런 카메라가 마침내 정서가 벌교횟집을 벗어나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정서의 앞에서 공간을 바라보는 이의 앞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을 기억하자. 인물의 뒤를 따라 그가 마주하는 공간만에 몰두해오던 관객들이 마침내 그 공간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인물을 어떤 공간으로 유도하거나, 이끄는 데엔 관심이 없다. 그저 따라가면서 인물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거친 뒤 마침내 때가 되면 관객과 인물을 이어주는 데에만 몰두하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는 것. 즉 영화는 관객과 인물 사이 거리 조정을 위해 억지를 부리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영화가 플래시백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가령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던 정서의 어린 시절을 비춘다거나, 아빠와 엄마의 젊었을 적 이혼하기 이전 시절의 이야기는 오로지 대사나 간접적인 정보로만 전해질 뿐 관객들은 그 속속들이 묵혀둔 사정을 알 수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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