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로.
노트북을 4일만에 켜본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며칠이었고, 마치 꿈을 꾸는 것마냥 비몽사몽 정신없이 지냈던 시간이었다.
처음 10시간 쯤은 대학병원 응급실에 있는 작은 격리실에서 머무르다가,
응급실로 나와서는 40시간 쯤 눕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고,
시간 내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에,
사람들의 잔뜩 날이 서있는 목소리를 내내 듣고 또 들었다.
평소에 항상 '숨쉬는 거 까먹으면 안돼'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밖에서 문이 잠긴 채 기계로 둘러싸인 격리실에 머무를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안났다.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보는 경험. 이렇게 심장 떨리는 일인데 다들 어떻게 아기도 낳고, 키우고, 책임지고 하는 걸까. 아무튼 보호자로서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또 아이러니하게도 큰일일수록 더욱 더 싸늘하게 차분해지는 나이기에, 지난 며칠 간 내 쪽에서는 그 어떤 에너지도 발산하지 않고 모든 장면을 그저 지켜보고 흡수할 뿐이었다. 마치 로봇이 된 것처럼.
응급실의 작은 장면 장면들.
하루 사이에 팔다리를 잘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을 데려와 무력하게 누군가의 처방을 기다리는 어느 아버지의 어두운 표정을 봤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이든 할머니 보호자가 질문을 하자 제발 저리 좀 가시라며 날카롭게 소리치는 직원을 봤고, 그분이 그렇게 몇 초간 자리에 서있다 뒤돌아서는 뒷모습을 봤다.
처음 질문하는 환자에게 대뜸 화부터 내는 사람도 봤다. (아마 같은 질문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미 너무 받았기 때문일 것 같은데) 오늘 만난 환자는 이 곳이 처음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알고 싶지 않은걸까.
의사에게는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하면서도 내내 정리를 해주었던 간호사분들에게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사람들도 봤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기선제압이 필요해서였는지)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이미 화가 난 표정으로 반말로 응대하는 직원도 봤다.
이 곳은 이렇게 굴러갈 수밖에 없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굴러갈 수 있는 곳이구나 싶었다.
서로 서로 날서게 굴어야만 질서가 유지될 수 있고 예외가 발생하지 않는다. 누군가 악역을 맡아야 모두가 중간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
적다보니 사실 가장 날이 서있던 건 그냥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격리실, 응급실, 병실을 차례로 이동하면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만 해도 이렇게 다채로운데 이 세상엔 대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걸까. 내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세상은 정말 일부의 조각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조각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다.
항상 약간의 농담과 비유를 섞어 설명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면서 분위기를 풀어주는 주치의분이 웃으면서 했던 한 마디.
'빨리 보내드리고 싶은데 저도 시간이 좀 필요해서요. 저한테도 정리할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별 거 아닌 한 마디로 시간을 확보하고 모두에게 여유분을 심어줬다. 그리고 나에게 구두로 설명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메일로 정리해서 며칠 간 형부에게 보내줬다. 자기도 그냥 월급받는 의사라면서.
인간미 같은 건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건 없어야 더 잘 굴러갈 수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건 큰 게 아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냥 느낌으로 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사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다 다르다는 것.
그 차이가 만드는 작은 여유분들을 모으고 모아서 나도 어떻게든 이 병원에서의 시간들을 잘 보낼거다.
침착하게, 차분하게, 체력 지키면서.
이제야말로 내가 강해질 차례인지도.
그러니까 잠시 감정의 스위치는 꺼두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