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버튼 없이도.
시간을 다루는 나의 태도가 조금씩 변해가는 걸 느낀다.
개봉하는 영화는 전부 영화관에서 챙겨봤던 지난 몇 년 간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영화관에서 2시간을 보내는 게 조금 어렵다. 안 그러려고 하면서도 손으로는 핸드폰을 꼭 쥐고 있고, 30분쯤 지나면 어김없이 시계를 본다. 바깥세상과의 확실한 단절을 위해서 작고 깜깜한 공간으로 들어가 놓고는 은연중에 바깥일들을 신경 쓰고, 2시간의 러닝 타임을 길다고 느낀다.
아무리 숏폼이 유행인 시대라도 그렇지, 2시간을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니.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몰입했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산만해진 걸까. 모든 게 단절된 채로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그 느낌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하고 생각하다가 요즘은 내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단,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게 훨씬 익숙한 사람이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둘은 같은 영상매체지만 확연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볼 때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영상을 앞뒤로 돌려볼 수 있다. 몇 배속으로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고, 잠깐 끊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이어볼 수도 있다. (한번 끊고 나서 다신 안 보게 됐던 영상도 많다.) 필요한 장면만 쏙쏙 뽑아서 좋아하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씬만 따로 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요약된 부분만 골라서 볼 수도 있다. 이제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다 보는 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정도.
이 모든 걸 영화관에서는 할 수 없다. 원한다고 구간을 뛰어넘을 수나 있나, 딴생각하다 놓친 장면을 되돌려 볼 수나 있나. 한번 못 들은 대사는 다시 티켓 끊고 처음부터 보지 않는 이상은 못 듣는다. 러닝 타임 동안 잠시 영상을 멈췄다가 다음 날 다시 이어서 보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 중에 '요약본'같은 건 없다.
근데 -
그게 영화관의 핵심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는 없지만 대신 그 시간만큼은 그 공간에 폭 빠져들 수 있는 거.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그대로 겪는 거.
그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내 인생을 꼭 유튜브 영상 보듯이 다루고 있는 건 아니었나 하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구간이 아니면 빨리 감기를 하고 싶어 한다거나,
이미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되돌려보고 싶어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신도 아니면서) 내 인생을 컨트롤하고 싶어 한다거나,
빨리 결론과 요약이 있는 지점으로 달려가고 싶어 하는 태도들.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꼭 의미 있는 사건들로만 점철된 시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하루, 조금은 지루하고 평범한 하루였다고 해서 빨리 감기 할 일도 아니다. 그렇게 띄엄띄엄, 좋은 순간만 겪으며 시간을 건너뛰다 보면 나이만 잔뜩 들어있겠지. 순식간에 80살쯤 되어서 내 인생의 결말을 대충 알게 됐다 한들 딱히 속이 시원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빨리 감기 & 되감기 버튼 같은 거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가는 것.
이 순간 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