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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Nov 23. 2017

교토를 걷다9

니시키 시장

각국의 언어로 뒤엉킨 니시키 시장을 걸었다.

항상 음식에 대한 리비도를 폭발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응숙이에게는 낙원이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심정으로 갖가지 먹을 것을 갈구하는 그녀를 보호하려고 애를 썼으나

셔터를 한번 누르는 순간마다, 숙이는 사라졌다가 뭔가를 빨면서 나타났다.

숙인 매우 비싼 음식에 대해서도 기꺼이 그 값을 지불했다.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그녀는 여러 음식 음식을 맛보고

각 접시에 대한 평가를 냉철하게 내렸다.

맛있다 없다 두 가지로 평을 하는 나와는 달리

숙이의 평가는 매우 디테일했다.

어묵을 먹고 나서는 생선살과 밀가루의 비율을 73대 27로 조심스레 예측해보기도 했다.

난, 그녀의 감각 절반은 미각이 차지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응숙이가 쳐먹는 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손수 만든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들은 가끔 초상권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니시키 상인들은 오히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가장 역동적인 자세를 취해준다.

나는 신사유람단이 된 것처럼 들떠서 새로운 풍경을 찾아다녔다.






      

일본은 귀여운 물건을 만드는데 남다른 소질이 있는 나라다.

대체로 기념품샵이라는 곳은 다소 쓸모없고 허접한 물건을

이곳에 다녀갔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사는 곳인데

 상점 물건들은 보는 순간

아! 이거 되게 꼭, 절대 필요한 건데

그동안 내가 왜 안 키우고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사용빈도면에서는 지극히 효용성이 떨어진다.     



나는 여행이 끝나갈 때쯤에는 늘 기념할 만한 물건을 하나씩 사곤 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는 거울 또는 쇠 목걸이,

지도가 프린트된 빨간 손수건이었다가

좀 더 자란 후에는 밥주걱이나 효자손이기도 했다.


작년 하노이 여행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쓰는 모자, 농을 샀다.

농은 가벼운 데다가 챙이 넓어

햇빛 차단 기능과 함께

얼굴이 작아 보이는 극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머리가 눌리지 않으며 바람도 잘 통해서 좋았다.  

나는 뜨거운 여름날 이것을 쓰고 학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려 했었다.

오후 산책을 할 때나 시장에 갈 때도 그만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을 쓰고 나가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착용 첫날. 나는 사람들의 의아함과 웃픔 같은 것들을 의연히 흘려보내지 못했고

농은 그런 나에게 실망한 채

2년째  에어컨 위에 얹어져 먼지 받이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 녀석은 내년 봄 대청소 시즌을 잘 버티더라도

다음번 이사 때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그 지역에 가장 특화된 물건일수록

돌아와서는 전혀 쓸데가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한 셈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냉장고 자석이라는 녀석으로 대체되었다.

세계 어느 지역을 가도 동일한 크기에

거의 비슷한 가격대에 공급을 되는 유일무이한 품목으로

지금 내 주방에 전리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30여 개국에서 왔는데도 하나같이 중국에서 태어난 것은 죽을때까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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