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관광포인트가 있어 어디를 돈내고 들어가고 어디를 스킵할까 고민하던 중
기특게도 응숙이는 도시샤대학교 재학중 옥사한 윤동주의 시비도 봐야 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귀와 코가 베어진 우리 선조들의 흔적도 살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과연 나와 친할 깜냥을 갖춘 년이다.
도시샤 대학교.
윤동주가 자취방에서 시를 쓰고
'한국어를 사용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한 죄'로 끌려간 곳이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런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동주가 같은 과 일본친구들에게 아리랑을 불러주었다는 교정이다.
조용한 뜰처럼 아늑한 길.
내가 즐거움을 위해 쏘다니고 있는 이 길을
설움을 온몸으로 견디었던 그가 걸었다니
한걸음 한걸음 꾹꾹 도장을 새기듯 걷게 된다.
입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도주'로 개명하고나서
참회록을 쓰며 괴로워 하던 사람.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가 느낀 부끄러움에 대한 공감 또는 연민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우리나라 만큼이나 대입도 취직도 힘들다 들었는데
건물밖에서 본 도시샤대도서관은 텅 비어있었다.
최소한 가방만큼은 책상위에 던져 놓고 놀러가는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대조적이다.
대신 마트 푸드코트를 가도 맥도날드를 가도
노트북켜고 공부하고 책 읽는 이들 천지다.
우리나라에선 커피숍에서나 허용되는 풍경인데 말이다.
얘들은 뭘 먹어야 공부가 되는 모양이다.
10미터 간격으로 서서 안내를 하던 일본 할아버지는
‘윤동주’라는 단어가 끝나기도 전에
아아 너네들 한국애들이구나 라고 알아채고는
쭉~~삼십메따라며 안내를 해주셨다.
이 곳은 그의 자취방이 있었던 곳.
윤동주 시비와 동주가 좋아했던 정지용의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시비는
전쟁과 식민지화에 반대하며 한일공동연구를 추진하겠다는 약속의 증표로
교토조형예술대와 홍익대가 함께 세웠다.
시비에는 아직 식지 않은 고인의 설움과 부끄러움이 함께 느껴졌다.
옆에 있는 방명록에는 다녀간 이들의 동주에 대한 절절한 사랑고백이 남아있다.
불과 70년 전이었다.
섬세하고 바르고 영민하며 잘 생기기까지 한 나의 영웅은 2년 뒤, 29세에 옥사한다.
"아이고, 이 답답한 선생아
부끄러워 하지 말아요. 다들 그리 살잖아요.
눈 딱 감고 일본어 써요. 아니면 절필을 하시든가.
딱 6개월만 기다리면 독립이 온다구요!!"
일어로 시를 썼다면 그게 윤동주가 됐겠냐만은...
아.. 주책스럽게 눈물이 난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원하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게 너무 부끄럽고,
독립을 위해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게 너무 부끄럽다
- 윤동주
귀무덤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명을 받아
임진왜란때 베어갔던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염장해서 묻어놓은 곳이다.
일부는 한국으로 이송되어서 사천과 전주에 묻혀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이게 관리가 잘 안되서 말이야. 이제 좀 가져가 줄래?” 하며
통째 우리나라로 이장 할 것을 요구했으나
"너네가 필요해서 가져갔잖아. 알아서 해." 라는 심산으로 두고만 보고 있단다.
얼마 전 까지 개인이 관리하다가 최근에는 교토시가 관리하고 있다.
귀무덤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길건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추모하는 신사가 있다. 기가 차다.
참으로 뭔가 특이한 짓을 해서 눈에 확 띄고 싶어하는
요상한 취미가 있는 일본이다.
아베의 참배할 때마다 아시아를 들썩이게 하는 야스쿠니 신사도
가해자인 전쟁의 주범들 옆에 피해자인 한국분들, 중국인들을 함께 모셔 놨다.
주변국들은 계속해서 영혼들을 분리해 줄 것을 요구하는데 끄떡도 안한다.
독일이 이제 됐다고 이야기해도
계속해서 유대인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는 것은
걔들이 특별히 착한 아이들이라기보다
유대계가 가지고 있는 자본이 없으면 독일산업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더 강해지면 괜찮다 해도
얘들이 납작 엎드려서 고메네고메네 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날은 생각외로 금방 올지도 모른다.
윤동주가 자신의 죽음 이후 6개월 뒤에 다가올 독립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