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추적추적 비질이 계속되었다.
제길... 3일 연속이다.
쏴아 쏴아 내린다면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숙소에 머물면서
무료 성인물이나 감상하며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이건 나가면 개고생이고,
딱 들어앉아 있기엔 심경이 괴로운 수준이다.
기특하게도 우린 길을 나섰다.
무려 새벽 6시.
가장 보고 싶었던 곳. 후시미 이나리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가장 일본스러운 곳'으로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고
미국의 여행저널리스트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은 곳이다.
물론 이곳을 못 가봤다 해도 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후시미 이나리는 여우를 모신 신사라
전철역에서부터 여우 여우 한 광경이 펼쳐진다.
세상에 모실 것이 없어서 여우를 모시나 싶지만
이 여우는 보통 여우가 아니다.
국민들이 한해 먹을 것을 관장하는 농업의 신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농사꾼이나 술을 빚는 사람들이 작황이 잘 되면
신께 감사하는 의미로 주황색 도리이를 하나씩 기증했다.
그러다 성격 급한 사람들이 씨를 뿌리기도 전에
이번에도 잘되게 해주실 거죠? 미리 고마워요 하며 도리이를 세웠다.
이것을 본 대기업, 야구단, 작은 노점까지
사업하는 사람들이 전국에 우후죽순 도리이를 세우자
관리 차원에서 기가 좋은 산에 1열 종대로 모아 놓게 되었다.
지금은 기부금을 내면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에서 도리이를 세워주고 제사도 지내준다.
백여 개에서 시작했다가 지금은 천 개.
치사하게도 기부금액에 따라 어떤 건 굵고 어떤 건 가늘다.
도리이 색부터 신관의 제복까지
쨍하고 새침한 주황색이다.
일본의 종교는 뭔가 특이한 구석이 있다.
일본의 인구는 1억 2천만인데 종교인의 숫자는 1억 9천만이라니.
무교라고 대답한 3천만까지 고려해 보면 완전 터무니없는 숫자다.
그건,
절에 가서 염불 하다 교회 가서 회개하고
마무리로 신사에 가서 절을 하는 넓은 포용성을 가졌다... 기보다
줏대 없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두개인 사람은
두 번 결혼한 사람보다 흔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카리스마 좀 있다 하는 사람은
자기가 종교 하나를 만들어 버려 신자들 중 25%가 듣보잡 신흥종교를 믿고 있다.
예전에 난리가 났던 오옴진리교도 그중에 하나다.
도리이가 세워진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눈 앞의 광경이 참으로 영화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에 배경으로 쓰였다는데
그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게이샤가 여기서 뭔 짓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으로만 보고 늘 열망하던.
좋은 영감을 주는 이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질 뿐.
정상까지 끝없이 이어진 도리이를 걷는 데에만 1시간이 소요된다.
올라갈 때는 이 기둥이 어디까지 계속될까, 이 끝에 어떤 장면이 나올까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에 다소 두려운 마음이 생겨
저절로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나왔다.
내려갈 때에는 편해질 줄 알았는데,
바로 앞에 죽여주는 장어덮밥을 판다는 응숙이의 말을 듣고는
더욱 두려워졌다.
벌써 사람들이 줄 서고 있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끝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누가 언제 세웠는지 말해주고 싶은 도리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잡아챘지만
절대 듣지 않고 뛰어 내려왔다.
여행 후,
나는 후시미 이나리의 장면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줄 몰랐다.
고작 배고픔 따위에 평생 기억에 남을 장면들을 흘려보냈다 생각하니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때 비가 며칠 동안 내린 데다가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몸이 달달 떨리는 바람에
급하게 H&M에서 옷을 사 와서 예기치 않은 레이어드룩을 완성한 것이다.
청바지 위에 군청색 골지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남색 재킷을 걸친,
나름 블루 계열의 깔맞춤이었지만
지금 다시 봐도 매우 언밸런스하고 촌스러운데다 비율도 안좋은 모습이다.
옷만 어울리게 잘 입고 있었다면 인생 샷을 건질만한 장소였다.
많은 여행사진 중 딱 한 장만 옷을 체인지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단연코 이 사진이다.
그래 놓고 뭐가 좋은지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