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 교토 가와라마치 호스텔
숙소로 가는 길은 너무 힘이 들어 택시를 잡았다.
타는 순간 운전석이 비어있어
3초 동안 황당해하고 있으니
반대편에서 기사님의 인사가 들렸다.
우리와 운전석이 반대인 것을
유념하고 타면서도 매번 깜짝 놀란다.
교토에서 택시를 탄다는 것은
드라이버의 스킬과는 상관없이
핸들과 주행도로가 반대라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경험이다.
교토의 기사님은 확실한 목적지의 위치를 파악할 때까지 1센티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도를 다 외워버릴 기세로 정독하다가
마침내 미터기를 켜고 출발한 후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적지 정문 앞에서 내려준다.
그가 보여준 직업정신에
매우 고마운 마음으로
1엔까지 정확히 거슬러 받았다.
두 번째 숙소는 조금 업그레드해서 인당 33000원이다.
뜬금없는 고백을 하나 하겠다.
이곳에는 6인용 혼성 도미토리가 있었다.
합법적으로 외간 남자와 한 방에서 잘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셈이다.
게다가 여성전용 룸보다 무려 2800원이나 쌌다.
나는 잠시나마 혼성 룸을 예약해보려 노력했지만
2800원을 아끼고자 하는 기특한 이들이 많은 겐지
그 룸은 훨씬 전에 판매 완료가 되고 말았다.
쩝. 다음번에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아... 뭘 어쩌겠다는 것이 아니다.
난 내 남편을 무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외국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1층의 바는 분위기가 매우 산뜻했고 방도 나쁘지 않았다.
다닐 때 응숙이와 서로 엉덩이가 부딪힐 정도로 좁다는 것만 아니면 말이다.
거울 티브이 옷걸이가 좁은 공간에 가장 효율적인 모양새로 들어서 있었다.
침대는 매우 두텁고 견고해서
위층에 있는 응숙이가 흑형을 데리고 올라간다고 해서
내 잠을 깨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뜻밖의 일은 화장실 겸 샤워실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면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샤워실 세 칸,
왼쪽에 화장실 세 칸이 있는 구조였다.
세면대 앞에서 숙이와 나는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밀푀유를 만들 듯 한 겹 한 겹 최선을 다해 쌓아 올린 것이었다.
한 꺼풀 벗기고 있는데
갑자기 열린 샤워실 문으로 멀끔한 브라더가 나왔다.
아뿔싸!!
이 공간은 남녀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던 걸 잠시 잊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못에서 방금 태어난 듯 청초한 그는
불완전 변태를 하고 있는 두 오징어와 눈이 마주치고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하다가
민망했는지 옷을 다 입고 있었음에도 수건을 허리께로 가져갔다.
참으로 풋풋한 모습이었다.
하필, 하루 중 가장 오징어다운 몰골로 이국의 미남을 만날 일은 무엇인가
“야! 얘 현빈 닮지 않았냐?”
“그래, 막 제대한 현빈 같다.”
바로 옆에 있는데 우리말로 뒷담화를 하는 것도
외국에서 할 수 있는 흥미로운 놀이 중 하나였다.
응숙이가 침실로 돌아간 후
내가 양치질을 하는 동안 현빈은 바로 옆에서 머리를 말렸다.
역사상 유래 없이 상쾌한, 기억에 남는 양치질이었다.
남녀공용의 세 칸짜리 욕실은
각종 냄새와 소리를 이성과 공유해야 하는
다소 멋쩍은 곳이었다.
미혼자일 경우에는 이성에 대한 환상의 상당 부분이 무너질 수도 있다.
나는 바로 내 옆에서 나는 샤워소리가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궁금해졌다가
남자의 것이 분명한 화장실 물줄기 소리에 까닭도 없이 불쾌해졌다가
손을 씻으러 온 모던보이에게 호감이 생기기도 했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말리고 공용 공간을 나오고 있는데
이번엔 어떤 못생긴 노랑머리 녀석이
허리춤에 수건만 대충 두르고 모든 것을 탈의한 채 들어왔다.
흥분해서 방으로 돌아와
서양 것들은 역시 개념이 문드러졌다며 응숙이에게 열변을 토했더니
그 좋은 것을 너 혼자만 봤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아...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군.
동양의 주부가 서양 젊은이의 반나체를
실물로 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니
갑자기 청년에게 고마워졌다.
응숙이는 역시 깨인 여자이다.
그녀가 점점 더 좋아진다.
주변의 선술집을 탐사해보려 구글 지도를 켰다가
카운터의 댄디가이를 한번 더 보려고 내려가서 물어봤다.
귀엽고 친절한 댄디가이는
나 대신 폭풍 검색을 해서 적당한 위치의 주점을 추천했으나
공교롭게도 그 집은 오늘 문을 열지 않았다.
선술집에서 꼭 아사히 생맥을 먹어야겠는 우리는
그 시간에 빨간 등을 단 주점을 발바닥에 땀나도록 찾아다녔다.
결국 분위기 좋은 주점을 찾아냈는데
그곳엔 기대와 달리 오다기리 조 같은 이들이 들어있지도 않았고
외국인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은 더더욱 없어 보였다.
메뉴판이라곤 매직으로 대충 갈겨쓴 일본어가 전부.
사진도, 영어로 된 설명도 없다.
그때 손님 중 매우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다가와
친절하게 메뉴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는 그 형들 때문에 맛있는 오뎅 튀김을 맛볼 수 있었다.
일본인들의 영어란
디스 이즈 베리 오이시. 와 같은 국적이 불분명한 언어였으나
이상하게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기분은 영어를 알아들었을 때의 기쁨 하고는 사뭇 다르다.
와로바씨 스메끼리 벤또 다마내기 와 같은 용어를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았던 이유와 같다.
“우리 쟤들하고 합석할까?”
감동한 숙이는 흑형도 아닌 일본형에게 마음을 열었다.
사실 아까부터 그 일본형은 자꾸 응숙이한테
과도한 친절을 베풀며 끼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응숙이한테는 남자가 꼬인다.
수컷들은 아무래도 돈 냄새를 맡나 보다.
헐!!! 저 새끼들이 어떤 새끼들인 줄 알고?
좀 더 똑똑한 내가 술집에서 만난 남자는 동물과 다를 바없다는
선조들의 말씀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경비를 아끼려면 하루빨리 엔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500이라고 써있는 동전 두 개를 내면
십이지장까지 시원 해지는 아사히 생맥 한잔과
고급 일식집에서만 보던 모둠튀김을 내어 준다.
얼~~~ 제법 물가가 착한데?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화로 계산하면 만원이 넘는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