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도시살이를 떠나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방콕으로...
늘 기대되는,
생각만으로도 흥분되는 여행지가 있죠.
제게는 제주, 교토, 프라하와 함께
방콕이 그렇습니다.
며칠 동안 진득하게 비벼 살며
아무 고민 없이 먹고 잘 수 있었던 방콕.
준비 없이 와서
구글링으로 서둘러 계약한
미스타일호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굉장한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거든요.
꼭 필요한 것만을 갖춘 심플한 방과 넓은 수영장.
현지식과 영국식이 깔끔하게 나오는 조식도 괜찮았습니다만
무엇보다 호텔 전체가 박물관,
또는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낡은 건물을
어느 예술가가 건물을 통째로 사들여
전 세계에서 소품을 하나하나 공수하여 만들었다는 이곳은
너무나 독특하고 예쁜 오브제들이
실내외 곳곳에 들어앉아있어
매일 건물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매일이 새로웠습니다
부지런히 닦아 맨들 거리던 테이블.
무심한 듯 필요한 장소에 놓인 벤치에
장식품 하나도 허투루 놓인 것이 없었으니...
아침에는 조식이 제공되던 바에서
밤이면 반값 세일 맥주를 마시며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도 있구요.
호텔 바로 앞에는 8500원에
1시간 내내 주물러 주는 마사지
그 옆에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느낌의 작은 카페.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손님맞이하는 개들입니다.
개를 네 마리나 마음껏 뛰어다니게 두고
애견카페가 아닌 그냥 카페라니요.
한국인이라 하니
강남역 9번 출구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보여주던 사장님...
은 매우 친절하셨습니다.
커피도 괜찮고
1000원짜리 샌드위치가 깔끔하고 맛있어
매일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3분만 걸어가면 시장이 나오는데
희한하게도 시장만 갔다 하면 쏟아지던 비.
갑자기 하늘이 노했다가
비를 퍼부운 다음
이내 얌전해지는
매일 봐도 신기한 스콜입니다.
사람들과 멈춰 선 김에
투당투당 망치소리 같은 빗소리 들으며
진한 국물의 쌀국수, 완탕면 정말 많이 먹었더랬습니다.
가끔 프로모션으로 1박에 3만 원에 뜰 때 있습니다.
조식 포함 불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코앞만 나가도 맛집이고 멋집인데요.
하루 종일 호텔 복도만 뒤적이며 다녀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까짓 거 한 달 살아봐? 했는데
이미 영리한 한국인이 한 달에 49만 원에 계약하고
몇 달째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수십 번 정독하는 책마냥
여유가 생길 때마다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방콕은
아침마다 바람이 상냥하고
햇볕 쨍해 빨래 금방 마르고
알람보다 더 정확하고 시끄러운 새소리 반갑고
무엇보다
비 온 뒤에 다독거리는 흙냄새, 풀냄새...
저 느므 하늘
저느므 전깃줄
저느므 꼬브랑 글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술을 아무리 넉넉하게 채워놔도
금방 바닥이 나는 게 여행인데
정해진 시간에만 술을 파는 태국인 거죠.
가장 맥주가 고픈 3시 30분에 이러긴 가요.
예로부터 국가의 금주 제도란
효과를 발휘한 전례가 없는데요.
저는 악법도 잘 따르는
조신하고 수줍은 객이므로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4시부터 나와 편의점 주위를 뱅뱅 돌며
설레는 맘으로 5시를 기다리다
돈 만원으로 한상을 가득 차려
기어이 행복을 맛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즐겁고
어른은 어른대로 편안한
또 놀러와.
언제든 전화해.
인심 좋은 사람과의 만남처럼 마음이 푸근해지는
방콕에서의 방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