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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Dec 02. 2019

치앙마이, 상냥한 그 발음처럼...

한국 돈 만원은 이곳에서 4만 원의 가치를 가집니다.

상큼한 오렌지색 비행기를 5시간 타고 내려오기만 하면

갑자기 지갑의 가치가 4배로 불어나지요.        


예쁘다. 맛있다.

진짜 싸다.
싸다는 말로 감탄하는 것은 뭔가 실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싸다는 말이 튀어나와요.

복잡한 마음 여러 생각이 들지만
당장 세계 물가를 통일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여행 중이고 이미 물가는 싸고 물건은 예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깊이 감사하는 것뿐.

인당 3만 원만 내면 조식 포함 호텔에서 묵을 수 있는데

커피, 물, 여기 있는 과일들이 하루 종일 공짜.



망고 먹을래? 물음에 씩 웃었더니

이렇게 이쁘게



낮엔 가끔 아이스크림에 맥주까지 준다는..



엉망진창인 몸을 막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수영장도 있으나

아무도 봐주지 않을까 봐 무서워 욕탕처럼 몸을 불렸고



로비에만 나가면 단체티를 맞춰 입은 직원들이

너 어디 가니 오늘 계획은 뭐니
오늘 간 곳은 어땠니 계속 말을 거는데


리슨 앤 코렉트 앤서를 찾는 기분으로 근근이 대화를 이어가다

좀 지나면 신이 나서 엉터리 말이라도 막 하고 맙니다.




그들 중
일본인에게는 일본말로 중국인에게는 중국말로,
국적 불분명한 외국인들에게는 영어로 말을 거는 희한한 직원이 있어서
넌 도대체 어디서 온 거니 라고 물었더니
인디아.
그냥 여기저기 잠깐씩 다닐 기회가 있어서 조금씩 배웠어.


잠깐씩 다녀서 프리토킹이 가능하다면
난 참 많은 언어를 할 수 있어야 할 터인데...
아이 엔비 유!


우린 걸었어요.

밖의 기온은 38도이지만...


땀에 옷이 흥건히 젖어서 갈아입으려다가

어차피 또 젖을 텐데 그냥 입지 뭐.

너 양말 며칠 신어봤어?

너 팬티 뒤집어 입어봤어?

만물은 자정작용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더러운 옷도 자꾸자꾸 입다 보면 깨끗해 진대.

누가 들을까 무서운 이야기들을 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우리는 군필녀예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독도법 하느라 지도 보며 산도 넘어 다니고
행군하는 날엔 20킬로 군장 메고 하루 종일도 걸어 다녔는데

이까짓 핸드백에 평지쯤이야.



가로세로 1.5km 네모 반듯한 성곽 안으로

백개의 사원이 있고

그보다 많은 게스트하우스와 호텔, 음식점이 있고

핫한 클럽이 세 개나.. 와우



곳곳에 보이는 스님 뷰.





쓰레기통 마저 제대로 에코 프랜들리 한.

너무나 상쾌한 무더위에



지루하지 않았던 거리


그렇게 자꾸 걸어 나가다 보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기 전에



빨래 성애자인 저의 손을 불끈 쥐게 만드는
치앙마이의 빨래방 앞도 지나고



귓불에 매달려 어리광을 피고 싶게 하는

부처님이 300번 출현하시고.



문맹이지만 모든 책들을 들춰보고 싶었던 중고 책방 거리도 지나고



노상에 있던 국숫집. 한 그릇에 1500원.

처음엔 맛에 감탄하다가

뒤로갈 수록 양이 작다고 셋이 계속 투덜거림.



식욕 떨어지는 색이라

앞에 있는 사람이 덜 먹기를 기대했던 블루 누들.

달달하게 혀에 감기는 코코넛 국수 존맛.



맛집이라고 찾아갈 필요도 없이,

어딜 들어가서 주문해도 2000원만 내면

적어도 기절할 맛의 국수가 나옵니다.



싸고 맛있는 로컬 맛집 '앤트 아오이'에서는

서로 감탄사만 연발.

똠양꿍 우와 씨... 존맛탱!

팟타이 이건 진짜 대박이야.

뿌 팟퐁 카레 이야. 헐... 열라...

나 여기서 살래!



향보다 커피 내리는 동작에 반해 들어간 록스 프레소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찾아주는 내 이름.



그리고 네 이름.


끝내주는 라떼에 훈남 사장님까지 계신다는 소문 듣고

억지로 찾아간 아카아마카페에는,

그 사이 빛을 잃으신 건지 아님 잠시 그분이 어디 가신 건지

그냥 남자 사람 사장님이 계셨지만



1500원짜리 라떼맛은 정말...

자꾸 맛있다고 해서 거짓말 같으시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맛있어요.
위에 거품 부분이 달지 않은 달고나(이건 써놓고 말이 안 되는^^) 맛이었거든요.

야외매장이 많은 치앙마이에서는



옷가게만 가도 인스타 성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같은 장소라도 밤이 되면 더 이쁘고



노상에 있는 가게들이 모두 아기자기하고


이른 아침.

숲 속에서 파는 빵을 먹을 수도 있고

(또 맛있다 그래서 죄송한데 저 레몬 타르트 800원 진짜 맛있어요

빵 사면 커피 공짜)



또! 4000원으로 즐기는 타이마사지. 늘 옳음.



게다가

4500원짜리 맥주 한잔을 시키면

핫한 클럽에서
정말 재미있는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거!



작은 시골에 외국인들이 가득 들어있는 클럽에서


일본 놈이 주는 술 마시지 말라고 귀띔하는 옆자리 중국 놈도 웃겼고

우리가 언젠가 중국을 제칠 수 있어하며
주먹을 불끈 쥐던 인도 청년한테 감동도 하다가

노랑머리들은 왜 하나같이 춤을 이리 못 추냐고 힐난하면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노는 클럽이지만

밤 12시 땡 치면
갑자기 구슬픈 음악이 나오며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서 자라 얘들아~ 하는...


여기는 태국의 정신수도 치앙마이!


아! 여길 소개하고 싶었어요.


깊은 숲 속에 숨어 있다시피 한

미나 라이스 베이스드 퀴진

모든 음식의 베이스가 쌀이고 유기농 원료만 쓴다는 곳입니다.


치앙마이 감성을 담은 숲 속 주말시장의 끝에 있어서                                                                                                                                                                                                                                                             


데려가고 싶은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는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다 출출해지면 들어갑니다.




테이블 옆으로 강물이 흐르고
갖가지 식물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곳.
로컬 음식점보다 두배는 되는 가격에

택시비까지 내야 했지만
아깝지 않았어요.



음식은 입보다 먼저 눈이 맛보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 이곳.
치앙마이에서 먹은 것 중 가장 비싼 한 끼......
이지만 다 합쳐서 25000 정도라는 거.




너무 행복한 여행이었어요.
같이 많이 웃고 속으로 울었던 4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잘 웃고 잘 놀 수 있었던 우리들인데.

20대를 건전하고 재미없게만 보내야 했던 게 안타깝기도 했어요.



저는 자라면서 늘 글을 써왔고
여전히 글을 쓰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상 국문과나 문창과를 가진 못했죠.


힘 있는 부모들은 손으로 바위도 내리칠 아들들을 두고도

어떻게든 기피하려 애를 쓰는데

몸무게 45킬로도 안 나가는 딸을 살을 찌워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어땠겠냐만은...



온몸에 멍이 들고 발톱이 빠지고 선배의 모진 말에 죽고 싶던 어느 날.

더 이상 못하겠다며 전화를 하니,

참아라. 다 널 위해서다.

익숙하게 듣던 그런 말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래, 아빠가 잘못했다.

가난한 부모 슬하보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번듯하게 입혀주는 거기가 낫지 싶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라는 것이 되면

너는 나처럼 힘들게는 살지 않을 것 같았다.

네가 우니 내 가슴이 무너진다.

그래 와라. 와서 이야기하자.

나도 더 아프기 싫다.




차마 아빠에게 실망을 드릴 수 없어

꽁꽁 싸서 문 앞에 둔 짐 다시 열어

그 위로 서러운 울음 토해낼 때.

주저 않고 달려와서는

흐르는 눈물 막히지 않게 눈물길 조심스럽게 터주고


그래도 넌 첫 번 째지, 난 몇 번이나 싸 봤어.

위로하던 이들이 있었어요.



그때도 우린 왼발. 왼발.

왼발을 맞추어 나란히 걸었죠.

달래주는 꽃 한 송이 없었던 연병장을...

당시, 1학년에겐 자유로운 걸음이 허용되지 않았으니.


흐느적거리던 내게 발과 팔을 정확히 맞추려

자꾸만 고쳐 걷던 아이.

선배들에게 들킬까 봐 앞서가며 우렁차게 경례하던 아이.

그 마음들이 느껴져 꺼억꺼억 넘어오는 눈물을 참느라

자꾸만 고개를 주억거렸었던...



그 숨쉬기도 힘든 공간에서

네가 내 등을 쓸어주지 않았다면

바스락 거리던 내 손 위에

너의 손을 포개 주지 않았다면.



임관 후 멋진 거리를 걸어보자 한지가 10여 년.

우리는 처음으로 치앙마이를 만난 겁니다.


그래, 사실 우리 그때.

아프지 않은 사람이 누구였으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겠냐며.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


좀 더 빨리 맞았음 좋았을 텐데
치앙마이.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 것 같던 그 상냥한 발음처럼.

치앙마이.

더 이상 왼발을 맞추지 않는
자유로운 우리 발걸음처럼...



오수에 빠진 부처님께 기도드립니다.

잠결에라도 제 기도가 들리신다면

다음 여행도
우리 동기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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