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 Nov 01. 2017

교토를 걷다3

기요미즈데라

숙소가격에 포함된 조식 때문에

시간을 재촉해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여행의 취지와는 사뭇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본전생각에

이른 아침부터 식당에 와있는 나는

참으로 대견하다.

내생애 가장 부지런한 순간들을 모아놓는다면

아마도 무료 조식부페 앞의 내모습이

상위권을 휩쓸것이다.

 


조식의 수준은 '아주 간단하니까 기대는 하지 마'

라던 직원의 이야기에 비하면 약간 봐줄만한 정도였다.

세계 공통의 보편적인 맛을 자랑하는 베이커리와 함께

일본 가정식을 흉내 낸 간단한 밥 국 반찬이 있었다.

위에 잔재하는 알콜을 휘석해줄

따끈한 국물이 시급해서 보이는 아무 국을 떴더니



고수도 깻잎도 아닌 독특한 향이 나는 일본식 국은

뭔가 상한 내음과 톡쏘는 느낌이 나

온갖 미묘함이 뒤섞이는데

종합하면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생각하며 원샷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수 백개가 나란히 청수사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바야흐로 가을인데

포토샵으로 싹 지워낸 것처럼 거리가 깨끗하다.

이른 아침부터 풀잎하나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위해

누군가의 새벽노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린 초딩때 낙엽은 흙 위에 쌓여 좋은 밑거름이 된다고 배웠다.

낙엽 쌓인 거리를 걷는 장면과 밟는 순간 나는 소리, 느낌.

이 계절에만 오는 소소함과 정겨움 또한 우린 알고있다.

깨끗해 보이는 거리를 걷기 위해 이 모든 걸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자연에게도 매우 억울한 일이다.









청수사는 일본의 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절이다.

난 그 이유가 사람들의 필요를 정확히 꽤뚫은

맞춤처방에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예언해보자면...



당신은 그곳에서

세 개의 가느다란 물줄기를 만나게 될 것이고

가정을 평안하게 해준다는 물,

불로장생하게 해준다는 물,

장사가 잘된다는 물까지

사람들의 고민을 다 해결하겠다고

달려드는 물 덕에 배가 불러질 것이다.

입구에는 치통을 낫게 해준다는 약수도 있다.

불소함량이 높아 신빙성을 얻은 곳이었으나

그 청결도에는 그닥 믿음이 가지 않을 것이다.

여러사람이 입을 댄 그릇엔

이미 다량의 뮤탄스균이 포진되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 임플란트 시술을 미루는 데에

도움이 될까 싶어 기꺼이 한그릇 마시고 나서야

쥐새끼만한 표지판의 그림을 보고

이 물은 먹는 물이 아니라

입을 헹구는 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 말길 바란다.

나와 응숙이, 또 많은 사람이 그러고 있다.




    

운명의 방향성이 궁금한 사람들은 운세를 본다.

문방구 앞에 500원짜리를 넣고 은색레버를 돌리면

허접쓰레기같은 장난감을 토해내는 것과 같은

일명 뽑기 시스템인데 그렇다고 우숩게 보면 안된다.

이래뵈도 이 운세보살은 교토의 모든 절과 신사에

짭짤한 부수입이 되고 있다.


보살님은 결코 좋은 말만 해주시는 분이 아니다.

나름 정형화된 비율로

대길, 길, 중길, 소길, 흉 으로 갈라 쓰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복불복으로 배출하시는,

한마디로 운명을 갖고 노시는 분이다.

결혼운 학업운 금전운 건강운으로

개별항목이 나눠져 있었는데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영어 중국어 한국어도 가능하다.



무엄하게도 보살앞에는 쓰레기통이 떡허니 놓여 있었다.

운을 받드는 경건한 분앞에 놓인 쓰레기통이라니...

입지 선정에 교묘한 의도가 느껴졌다.


'사실 운명이란 건 말야...

쓰레기통에 쳐넣으면 그만이야'


나도 재미로 한번 뽑아봤는데

니미럴... 기분 나쁜 괘가 나왔다.

찬찬히 읽어보니

'대길'로 가고 싶으면 좀 노력을 해보는게 어때?

인생을 좀 날로 먹는 경향이 있더라

정도의 뜻으로 종합되었다.

완전 수긍할 수는 없지만

딱히 아니라고 하기도 뭣하다.

"중길이라니. 쳇 재수없어"

인생의 모토가 중간만 가자임에도 불구하고

'넌 진짜로 딱 중간만 갈거야' 확인을 받으니

이렇게 기분이 상한다.

하긴... 모두들 “대길” 을 원하겠지만 뭐

세상의 일이 어디 그러한가.


내려주신 점괘가 마음에 들면 몸 안에 간직하면 되고

나쁜 괘가 나오면 당황하지 말고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냥 줄에 묶어두면 된다.      



그렇게 모인 1000원 곱하기 980

무려 백만원짜리 풍경이다.

저 중에 내 1000원도 들어 있다.          



 


내 운명을 니가 어떻게 알아!!

라고 삿대질을 하면

그걸 알면서 왜 물어 이년아!!!

라는 호된 꾸지람이 들려오는 곳이다. 청수사라는 곳은...


사람들은 행복을 기원하러 오지만

가족의 평안도 만수무강도 성공에도

고작 냉수 한잔만큼의 마음의 안정을 가져갈 뿐

열심히 살아가야 할 주체는 자신인 것을...  

우린 이미 세상의 걱정거리는

빌어 구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면한 과제는 자신이 행동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 것!

그래서 우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맛집을 찾아 움직이는 기민함을 보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토를 걷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