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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Feb 06. 2020

오, 연남/유니드마이요거트_01

[수지] 나는 어떻게 그 요거트를 원하게 되었나

Graphic Poster (C) SUJI. 2020


오, 연남! 

어쩌다 연남에서 함께 살게 된 다섯의,

로컬 맛집 리뷰 프로젝트


두번째 공간 / 유니드 마이 요거트(You Need My Yogurt)



나는 어떻게 그 요거트를 원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엔 야구르트 아줌마가 참 많았다. (요즘 아이들은 야구르트 아줌마의 존재를 알까. 찾아보니 2019년에 정식 명칭이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로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은 국 반찬도 배달하신다고. 라떼는 말이야~)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면, 골목 어귀에 있는 야구르트 아줌마를 만나곤 했고, 자연스레 두 손엔 요구르트 같은 것들이 쥐어지곤 했다. (앙팡을 얻는 날은 운수대통인 날인거다.)


그 때 내겐 '요거트' 보다 '슈퍼백'이란 명칭이 더 익숙했는데, 슈퍼백이 실은 '슈퍼100'이고, 그런 형태의 유제품을 전부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그냥 제품명일 뿐이란 걸 알았을 땐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뭔가 지퍼백, 에어백 이런 것처럼 요거트를 담는 백이라 슈퍼백인줄 알았지..


88년 처음 등장한 야구르트 아줌마와, 그 시대의 패키지. 레트로가 유행이라 지금 봐도 왠지 예쁘다. 이미지 출처 : 한국야쿠르트


그 때는 곧 죽어도 무조건 '딸기맛' 슈퍼백이어야만 했는데 (어릴 때부터 고집이 넘쳤다), 윗 면을 뜯었을 때 드러나는 먹음직스런 붉은색 표면과, 입 안에서 알알이 터지는 촉촉한 딸기 알갱이들이 그렇게 엄청날 수가 없었다. 간혹 딸기가 없으면 복숭아로 타협을 보기도 했다.


그랬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마법처럼 플레인이 온 것이다.


플레인이라니.. 이게 바로 어른이 된다는 걸까.. TMI지만 장희원님 사랑합니다. 음악 오래 해주세요.  이미지 출처 : 악보가게



달콤하면서도 새콤하고 부드러운데 또 강단있고, 씨리얼을 넣어 먹어도 맛있고 초코볼, 블루베리, 과일을 넣어도 맛있고 그냥도 맛있고... (이게 어른의 입맛인 걸까.. 플레인 최고..)


그렇게 나는 성공한(?) 플레인 요거트 어른이로 성장해 다양한 취식법으로 요거트를 즐기게 되었다.

카페에서도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 비요뜨도 한번에 3개씩 사먹는 뭘 좀 아는 어른이 되었고, 엔간한 요거트 아이스크림도 거의 섭렵해서 더 이상 나를 감동시킬 요거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저 같은 어른이들에게 감히 고합니다.


당신은 유니드 요거트를 원하게 될거야!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던 빈티지하고 귀여운 오브젝트들. Graphic (C)SUJI. 2020


첫째, 일반적인 카페와 다르게 '요거트'만 전문으로 파는 카페다. (자신이 있다는 거지.)

요거트가 요거트지 뭐 다르겠어 생각했던 날 후회하게 만드는 쫀쫀하고 깊은 맛의 유기농 그릭 요거트는 두번째 감탄을 자아내고, 뭘 선택할지 모를만큼 다양한 토핑과 종류는 절로 어깨춤을 추게 만든다. (진짜임.. 결국 추천해달라고 해서 주문했다.)


단골인 샤인은 그래놀라 보울을 시켰는데, 은근히 든든해서 아침이나 브런치 정도의 한끼 식사로도 충분해 보였다. (오후엔 사람이 정말 많아서 자리가 없기도 하고, 아침에 오는 거 추천!)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즌 요거트'(아이스크림) 매우 추천. 진짜 깊은 맛이 난다 ㅜㅜ 요거트 아이스크림 2n년차 인생에서 손에 꼽는 맛입니다. 설탕도 살짝 뿌려줘서 아삭 아삭 씹히는 식감도 진짜 최고라구요.

나는 호두 아몬드 크랜베리 토핑 조합으로 올려 먹었는데, 5가지 토핑 중에 아이스크림에는 올리기 힘든 토핑도 있다 하니, 뭘 골라야 할지 모를 땐 사장님께 추천을 받자.


둘째, 우리는 먹지 못했지만, 샤인 피셜 크로와상이 정말 맛있다고 한다. (그날 판매할 양만 조금씩 준비하셔서 잘 품절되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제 대신 드시고 후기 알려주세요 ㅠ)




Graphic Poster (C) SUJI. 2020

계단을 통해 들어오는 문, 테이블, 유니드 공간 속에 존재하는 요소들과 로고 쉐입으로 구성한 이미지.

각각의 오브젝트는 원래대로라면 올바르게 놓여져 있어야 하는 피동적인 물체들이지만, 유니드의 세계 안에서 내가 존재함을 진솔히 갖게 되는 건, 거울에 반사되어 마주보이는 천장의 영향력에 가깝다.

그렇기에 현실의 영역에선 무엇이 무엇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투영된 텍스트만 뒤집어진 채 존재한다.

오브젝트가 오브젝트로서, 텍스트가 텍스트로서 온전히 자리하는 건, 오히려 반전된 세계 속에 있다.



(잠시 진정하고) 

어쨌든 나는 디자이너니까 공간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가장 인상깊었던 건, 지면에서 반층 아래에 있는 구조. 

입구에서부터 아주 높고 깊은 계단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토끼굴을 발견한 앨리스처럼 한칸 한칸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들이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로 나를 한 발 이끄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덕분에 층고가 높아 옛 귀족 누군가의 저택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곳의 빈티지한 오브젝트들도 그런 분위기에 한 몫을 더한다. 녹아내리는 바닥의 양초 더미, 빈티지한 찻잔과 액자. 애정을 담아 하나 하나 수집한 것 같은 오래된 LP 패키지들까지.

잘 모르던 어떤 이웃의 식탁에 초대된 기분이 들어서, 앉아있는 것만으로 괜히 주변을 둘러보며 신나게 됐다.



빈티지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오브젝트들.



마지막으론, 천장을 가득 메운 거울.



맞닿은 두 세계를 공유하는 영화 <업사이드다운(Upside Down, 2012)>에서 닿지 않는 위쪽 세계는 겉보기에 아름다운 이상처럼 그려지고, 라캉은 거울단계이론에서 '거울 속의 이미지'는 진정한 주체가 아닌 타자의 이상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그대로의 우리를 보는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유니드에서 함께한 거울 속 우리는 반짝였으니까. 뒤죽박죽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판타지일 뿐이면 뭐 어때. 행복한 순간들을 웃으며 나눠가졌으니 어쩌면 그 쪽이 이상일 뿐이래도 그 모습을 본 것으로 난 오래 이 순간과 장소를 기쁘게 기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요거트란게 참 그렇다. 이것저것 섞이는데도,

섞이는대로 어쩜 다 멋지지.

어떤 요거트를 원해도, 결국 그 작은 통을 손에 쥔 나는 행복해진다는 걸.


높은 층고에, 고개를 힘껏 젖혀야 겨우 볼 수 있는 거울 속에는, 요거트를 손에 쥔 우리가 있었다.

그 장면이 행복해보여서 아주 꿈 같았다.





[오, 연남 다음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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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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