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여행의 시작
정말 여행을 결심한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떠날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하다가 전날 잠 못 이루고 뜬눈으로 밤을 보내주는 게 나만의 공식.
비행기에 올라 창문 너머 구름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잠들면서 시작하는 그런 여행이 유독 더 생각나는 밤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데리고 옆 나라 일본을 갔다. 나의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자유여행이었다. 일본을 시작으로 그 해 여름에는 유럽을, 이듬해 여름에는 인도네시아를 보여주었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떠나는 재미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고맙다.
두 번째 여행에서 프라하에 반해 홀린 듯 한국을 떠나 1년을 지냈다. 떠나기 전에는 그동안의 거의 모든 여행을 언니와 함께 했기에 앞으로의 여행이 막막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혼자 하는 여행이 나쁘지 않았다. 또 감사하게도 나는 내 생각보다 혼자서도 잘 즐기는 사람이더라. 혼자 떠나는 순간의 감정은 함께 하는 여행과 약간 달랐다. 기쁘고 설레기만 했던 감정에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더해졌다. 앞으로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의 단점은 음식을 이것저것 시켜 나눠먹을 수 없다는 것, 예쁜 곳에서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아름다운 곳을 보고도 그 감정, 기분을 나눌 수 없다는 것, 늦은 시간대에 나가기가 겁난다는 것.. 외에도 많다. 그런데도 왜 혼자 가냐고 한다면 장점이 이 단점들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모든 순간을 내가 좋아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혼자 여행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하철보다는 버스, 미술관보다는 공원, 계획 여행보다는 무계획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꽉꽉 채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여행을 함에 있어서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가끔 찾아오는 객창감도 혼자 하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귀한 감정이다.
요즘 들어 더 떠나고 싶다.
카메라 목에 걸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
지금은 마땅치 않으니 그동안의 여행 기억을 들춰보며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