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Oct 06. 2023

서로 다른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브루니 아일랜드

23-02-25

여행 계획을 제대로 짜지 않고 허겁지겁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30분을 달려 선착장에 도착해서 급하게 어떻게 여행을 다니면 좋을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시드니의 블루마운틴에서도, 마리아 아일랜드에서도 느꼈지만, 호주의 여행지에 가면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얻을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작은 팜플렛을 보며, 내가 어디를 꼭 들리면 좋을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조금 찾아보고 페리의 경치를 구경해야지 했는데, 차에서 한 번 나가보지도 못하고 섬에 도착했다. 호주는 정말 배를 떼고 붙이는 게 빠르다. 심지어 운항도 빠른 거 같기도 하고.



이곳은 브루니 아일랜드의 가장 유명명소라 할 수 있는, 더 넥이다. 마치 목처럼 생겨서 두 개의 바다를 가르고 있다. 마침 선착장에서 가깝기도 하고,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일찍 이곳에 들렀다. 나는 여기보다 오늘 하게 될 트레킹이 더 기대된다. 태즈메이니아는 역시 트레킹이니까!



이 트레킹 코스는 잘하면 화이트 왈라비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본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거 같지만 내게 그런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며 걸어본다. 내가 좀 쉬운 코스를 찾아다니고 있긴 하지만, 이곳은 트레킹이라고 해도 거의 걷는 곳이 전부다. 등산이랄 게 거의 없다.


시작 지점에서는 한 가족을 만났었는데, 어느 시점에 가니 걷는 사람이라곤 나 밖에 없었다. 주변에는 온통 나무뿐이고. 혼자였다. 완전한 혼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혼자 걷는 이 길에서 나는 전혀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이곳은 정말 멋졌다. 사진에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얼마나 한적하고 평화롭던지. 라군에서 잔잔히 떠다니던 물결이 내 마음을 얼마나 고요하게 만들어 주던지.



호주에 처음 왔을 때는 사진을 찍고서 카메라에 담긴 풍경이 훨씬 더 나아 보여서 이상했었는데, 요즘엔 이 풍경을 하나도 담아내지 못하는 카메라를 보며 황당할 따름이다.



기대보다 유칼립투스 향이 아주 강하진 않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르막길이 많고 등산 같은 코스도 있었다. 약간 험한 산세를 또 걷다 보면, 진짜 모험가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언덕을 올라 풍경을 바라보면 올라오길 잘했다 생각하게 된다. 이런 걸 보기 위한 고생이라면 언제나 환영해야겠지.



정말 보물 같은 풍경이다. 귀한 기운이 나를 가득 채운다.


관광객이 많고, 바다와 면하고 있는 면적이 커서 미식으로도 유명한 태즈메이니아. 브루니 아일랜드는 굴과 치즈 요리가 특히 유명하다. 나는 그중 치즈 요리를 맛보러 갔다.



나는 요즘 거의 간을 하지 않고 재료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조리를 한다. 그렇게 먹다 보면 이런 맛의 풍부함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 비트루트에서는 와인향이 났고, 쥬키니 호박은 머스터드 씨와 함께 절였는지 피클 같기도, 단무지 같기도 한 그런 맛이었다. 빵의 맛도 고소하고 치즈의 풍부한 향과 함께 곁들이면 그 맛이 정말 끝내준다.



계속 고민을 하다, 등대로 향하기로 한다. 이런 비포장 도로를 3-40분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호주에서 네 번째로 세워진 등대이고, 현재 남아있기로는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라고.



대학서 가장 처음 배웠던 지문항해학이라는 과목이 있다. 해가 떠 있으면 배는 어디로 가든 두렵지 않다.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섬들과 해가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옛날에는 특히 아무런 불빛이 없는 곳에서 내 앞에 있는 게 땅인지, 바다인지 구분해 내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을 거다. 그때 불을 밝힌 이 등대. Lighthouse. 지문항해학은 해와 섬, 그리고 등대를 보며 항해하는 법을 알려준다.


내게는 이런 등대들이 있다. 어두울 때마다, 길을 잃을 때마다 내 항로를 제대로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나는 자주 혼자 걷게 될지라도, 이런 등대들이 있어 길을 잃지 않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등대 중 하나는 바로 오늘과 같은 여행이다. 여행의 여정은 자주 인생의 여정을 닮아 있다.


오늘의 시작은 허둥지둥 댔을지라도,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왔을지라도, 결국 나는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고 알차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오늘의 여행을 통해 또 배운다. 언제나 가야 할 곳이 잘 보이지 않는 여정이지만 결국 나는 이 등대의 도움을 받아 내 목적지에 도착하고 말 거란 걸.





매거진의 이전글 믿기 나름인 영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