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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Oct 20. 2023

캔버라에는 호주 국립 갤러리가 있다

23-03-21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잔다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 백패커스는 8인이 함께 지내는데 이상하게 전에 머물렀던 백패커스 같은 교류는 없었고 그저 잠만 자러 다들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우리 방엔 천둥이 자꾸 내리쳤다. 얼큰한 코고는 소리에 놀라 자다가 열댓 번도 더 일어났다. 아침에 다들 잠을 설친 듯한 얼굴로 애매한 공감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먼 곳에 주차해놓고 걷는 길이 정말 좋다. 호주의 각양각색 주택들이 난 정말 좋다. 도로변의 커다란 가로수를 볼 때마다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우거진 나무 아래에 서면 보살핌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늘 날씨가 선선해서 인지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오늘의 행선지는 내셔널 갤러리 오브 오스트레일리아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다. 마크가 추천해 준 캔버라의 예술적인 갤러리다. 



갤러리 바깥의 조각물들을 보면 약간 두근 거린다. 음식으로 치자면 애피타이저를 먹는 기분이랄까. 기분 좋은 떨림을 가지고 갤러리에 입장한다.



이 갤러리는 국립 갤러리인 만큼 무료로 운영이 된다. 호주의 여타 다른 행정처리와는 다르게 나를 보자마자 이것저것 캐묻다시피 해서 빠르게 티켓을 발권해 줬다. 일을 바쁘게 한다기보다 '당신의 빠른 갤러리 관람을 도와드릴게요' 같은 느낌이었다.



전시초입부터 굉장히 강렬한 설치 작품이 나온다. 핸드폰을 보느라 머리가 떨어졌다. 그런 작품을 보며 나는 사진을 찍는 상황이 굉장히 모순적이게 느껴져서 웃겼다.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참상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작품의 볼륨감이 정말 멋졌다. 내가 갤러리에 들리는 이유의 90퍼센트 정도는 바로 이런 깊이, 질감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다. 실제로 봤을 때 그 표현능력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명이 모여서 큐레이터로 보이는 분께 해설을 듣고 있다. 모두가 집중해 있는 광경 또한 멋있다. 저 벽의 페인트도, 그 예술품을 섬세하게 감상하는 사람들도 모두 작품 같다.



이 작품이 강조하고 있는 건 Hollow, 텅 비어 있음이었다. 텅 빈 구조물과 그림자를 보며 꽤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전시에 대해서 잘 아는 바는 없지만 가끔 전시장의 조명을 찾아볼 때가 있다. 어느 각도에서 어떤 식으로 조명을 비추어 작품을 더 잘 볼 수 있게 조성하는지, 그런 환경에 관심도 있다. 이 갤러리는 조명을 달고 있는 천장 또한 멋있다.



호주의 뮤지엄, 갤러리에 가면 원주민 작품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이들은 단체로 저렇게 설명 듣는다. 아마도 역사를 교육 중이지 않을까? 소피가 자주 버릇 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이 나라는 저런 게 정말 좋아"



설명을 읽기도 전에 온갖 종교 건물들이란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작품의 이름은 Shelters다. 명상이나 기도를 바라는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아무튼 일상생활의 안위를 바라며 만든 작품이다.



돌아가는 길엔 배가 고파서 힘이 떨어졌지만 갑자기 미소 에너지를 얻었다. 아이의 자전거에는 보조바퀴가 달려있지 않고, 아이는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한다. 덕분에 엄마는 옷을 저렇게 힘껏 올려가며 아이를 보조한다. 웃음 나는 풍경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야 한다는 어제의 배움을 잊지 않고, 그냥 우선 좀 앉았다. 앉고 보니 몇 시간을 계속 걷고 앉아 본 적이 없다. 숨을 좀 고르고 이제 시드니로 떠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몇 시간을 달려 다시 소피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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