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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11일차 - Beverly Hills

2022.07.22.


아침을 한식으로 먹고 LA폴하우스와 작별을 하고, Universal Studio 2일 차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preferred 주차장으로. 프랑캔슈타인형님 한 번 더 봐야지. OYYYYYY 아저씨 차는 보이지 않았다. 


‘Jurassic World – The Ride’로 상큼한 스타트를 위해 Lower Lot으로 바로 향했다. 곳곳에 Nope이란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유니버셜 픽쳐스에서 새롭게 배급하는 영화 홍보 중인가 보네. ‘싱2게더’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을 때 왔으면 기분이 더 상큼 발랄했겠지. 냉큼 검색해 봤다. 아하, 어쩐지 포스터부터 미스터리 기운이 느껴지더라니 ‘Get Out’의 조던 필 감독의 영화였다. ‘Get Out’ 주연했던 Daniel Kaluuya가 다시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스티브 연도 포스터를 등장했다. 영화 홍보하러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만 나가지 말고 ‘라디오 스타’나 ‘놀면 뭐 하니’에도 한 번 나오시죠.


옷 젖는 건 이제 그만. 다음은 Studio Tour. 트램 버스를 타고 유니버셜에서 제작한 영화 세트장들을 투어 하는 코스인데, 나름 영화 300편 리뷰글도 써 본 사람이로서 기대가 컸다. 유니버셜에서 제작한 영화 포스터들이 이어지며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영화 및 드라마 세트장들이 구석구석 등장했다. 친숙한 죠스 세트장에선 실제 죠스 모형이 뛰쳐나오기도 했는데 며칠 전 몬테레이에서 고래 찾다 온 사람들이라 감흥은 별로. 이 코스의 클라이맥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전쟁’에서 비행기 재난 장면을 재현한 세트장이었는데, 이렇게 정교하고 웅장할 일인가 싶었다.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세트장도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평가들이었지만 내가 시청하지 않은 관계로 큰 감동은 없었다. 수백 번 본 ‘프렌즈’ 세트장 정도는 나와야 물개박수를 치지. 백투더퓨쳐 자동차도 반가웠고, ‘분노의 질주’는 레이싱 장면을 3D로 그럴싸하게 재현해 놨다. 저 세트장들 에어비앤비로 좀 풀어주자. 전 세계 영화광들 몰려들 텐데.


점심은 Panda Express. 우리 입맛에 가장 무난했고, 가성비는 말해 뭐해. 후루룩 짭짭 판다를 즐긴 후, 깔끔하게 2시 반에 퇴근했다. 아이들도 더 있자고 떼쓰지 않고 쿨하게 받아줬다. 유후, 이틀간 Universal Studio 즐거웠습니다.


예정보다 빠른 퇴근에 몇 시간의 시간이 생겨, 건너뛸 뻔했던 비버리힐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셀럽들의 대저택 쪽은 내가 살고 있는 남양주, 구리와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서 패스하고, 대충 Brighton public parking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거닐었다. 로데오 거리에 즐비하게 보이던 명품샵 가게들을 기웃거렸지만, 디자인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벌도 안 샀다. 취향만 맞았어도 싹쓸이했을 텐데.


명품 거리에서 커피도 한 잔 해야지. 스벅스벅 걸어갔다. 비버리힐스 스타벅스는 좀 달랐다. 더 더러웠다. 냄새도 퀘퀘 했고. 그때 갑자기 지아가 소리쳤다. “핸드폰!”


이번 여행을 오기 전, 지아에게 내가 예전에 쓰던 갤럭시노트 공기계를 하나 줬다. 그걸 사진기처럼 찍고 다니라고. 공기계지만 난생처음 핸드폰이란 걸 손에 쥐어 본 지아는 여행 내내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애지중지 가지고 다녔다. 지금 지아가 스타벅스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핸드폰이 안보인 것이다.


이미 부주의하게 가지고 다니다가 엄마에게 몇 번 지적을 당했던 터라, 이번엔 엄마에게 제대로 혼났다. 그러고는 지아에게 아빠랑 같이 가서 찾아오라고 했다. 헐, 갑자기 내가? 원래 길치에 여긴 부산말 서울말 다 안 통하는 미국인데, 내가? 우리까지 잃어버리려고? 그래도 지아의 지난 10일이 가득 담겨 있는 사진들, 이건 찾아줘야지. 할 수 없지 뭐. 기억을 거슬러 내려가 보니, 중간에 잠시 들린 건물 화장실에 두고 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내 안의 눈, 코, 귀, 입 내비게이션들을 총동원하여 지난 발걸음들을 재구성하여 결국 건물을 찾았다. 지하 1층 화장실이었다. 지아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핸드폰은 없었다. 실망과 좌절로 범벅된 얼굴이었다. 난 카운터로 갔다. 여자 화장실에 핸드폰을 두고 왔는데 혹시 받으신 거 있냐고. 사진이 많이 들어 있어서 찾고 싶다고 했다. 


말해 놓고 보니 이상했다.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서 사진? 아니 아니, 저 말고, 에헤이, 이 사람이, 저기 보이는 우리 딸이 두고 왔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심하게 책상 서랍에서 핸드폰을 툭하니 꺼내 줬다. 한마디 말도 없고, 아이컨택도 없이. 힙하네. 


지아는 이제야 활짝 웃었다. 너무 기분 좋아하길래, 그거 공기계지만 와이파이 연결하면 인터넷 쓸 수 있다는 걸 알려줄까 하다가 참았다. 지아야, 혹시 이 글 보고 알게 됐다면 미안. 그거 전화만 안되지 와이파이로 인터넷 쓸 수 있는 기계였단다. 지아는 엄마로부터 여행 끝날 때까지 핸드폰 사용금지 가처분을 받았다. 너무 가혹한 페널티 아닌가 했는데, 지아도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으니 쿨하게 받아들였다. 


다시 4명이 합체하여 비버리힐스 거리를 더 걸었다. 주위를 감싸는 자본의 향기, 고향에 온 기분이구나. 세 여인들은 마네킹들을 보며 “이 옷 예쁘다, 저 옷 멋있다” 말잔치를 벌였다. 언젠가 셋 다 같은 샵 가서 옷 한 벌씩 사서 나올 날도 있겠지. 유니클로, 자라 말고.


오늘 저녁엔 Irvine에 사는 동권이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지금 출발하면 저녁 전까지 도착하겠다 싶어서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동권이가 퇴근이 늦어져 7시 넘어서 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다시 파킹하기도 귀찮고, 여기 살 것도 없더라. Urvine으로 건너가 South Coast Plaza에서 시간을 때웠다. 오늘 하루 Universal Studio와 Beverly Hills를 다녀온 사람들이 지역 쇼핑몰에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적당히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Irvine, 동네가 참 예쁘네. 이래서 한국 사람들이 얼바인 얼바인 하는구나. 안전하고 깨끗한 동네, 내가 주재원이래도 여기 살겠다. 지금까지 주차를 할 때마다 벽돌로 유리창이 깨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뒷정리를 했었는데, 여긴 열려 있는 트렁크에 아이패드를 두고 내려도 괜찮을 것 같은 도시였다. 동권이 집 몇 분 앞두고 만난 도로명이 Busan이었다. 요 녀석, 부산에서 온 거 티 내나. 


집들이 전부 똑같이 생겨서 헷갈렸지만, 입구 문 앞에 '경축! Irvine 소프트볼 올스타에 선정'이란 내용의 응원 팻발이 보였다.  저 집이네. 아빠 닮았으면 운동 잘하겠지. 


거의 20년 만에 보는 친구라 설렜다. 20년 만에 연락해서, 나 가족들 데리고 너희 집에서 이틀 자겠다고 했더니, 이틀은 무슨 이틀이냐며 까불지 말고 5일 자고 가란다. 난 5일 묶을 생각도 있었는데, 지영이한테 혼났다. 자란다고 다 자면 민폐라고. 그래서 이틀로 픽스했다.


20년 전 기억하는 얼굴과 몸뚱이에, 스노우 앱에서 20년 후라는 스킨을 입혀서 이렇게 변해 있을 것이라 예상한 모습이 있었는데, 얼추 비슷한 몽타주가 나타났다. 그런데 예상 못한 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었다. 나의 로망도 저런 수염인데. 난 아주 느린 속도에 얍삽한 일본 순사 스타일로 자라는 데다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까지 있어 한 번도 제대로 길러보지 못했는데, 이 녀석은 그걸 해내고 있네. 반갑다는 표현으로 수염 밑 턱을 한 대 가격하고 싶었지만, 가족들 앞이라 봐줬다. 


이 놈은 내가 아는 생명체 중 가장 웃긴 녀석이다. 전성기 땐 말 한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웃겼던 놈이다. 대학 방학 때, 서울 친구들이 부산 놀러 오면, 이 녀석을 불러 내 서울 친구들 좀 웃겨주라고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지우 지아에게도 이 아저씨 웃기니까 잘 들어 보라고 했다. 보통 이렇게 멍석을 깔아 놓으면 웃기기 쉽지 않은데, 그 와중에도 소소하게 계속 웃겼다. 


여행 오기 전, 지영이가 동권이네 선물을 산다고, 아이가 몇 명인지 물었다. 난 한 명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다 내가 이 녀석 결혼식 때 피아노 치고 축가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첫 째가 그다음 해에 태어났었지. 큰 애가 한 명 더 있구나. 그 기억이 떠올라 현관문을 열기 전, 두 명이라고 수정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더니 딸 둘 아들 하나가 우릴 반겨주었다. 난 도대체 아는 게 뭐지?


3층짜리 집이었다. 1층엔 주차장과 첫째 방이 있고, 2층은 거실과 주방, 3층에 방이 두 개였다. 그중 3층 둘째 방을 우리 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 온다고 방구석구석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느껴져서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물론 동권이는 기여 1도 안 했을 거고 제수씨가 다 했겠지. 욕실 수건도 새 걸로 다 바꿔 놓았고, 이불보 베개도 모두 세탁 건조 후 막 나온 듯 뽀송뽀송했다. 좋네, 우리 친구 집. 


내심 거실에서 동권이랑 놀다가 소파에서 자빠져 자고 싶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처음 보는 아저씨가 거실에 자고 있으면 민폐일 것 같아서, 얌전히 방으로 향했다. 유니버셜을 이틀 연속 다녀온 몸뚱아리는 샤워가 끝나자마자 바로 스위치가 꺼졌다. 동권아, 오늘은 잘란다. 내일 놀자.



사진 찍으려고 대기 중인 수십 명 앞에서


5살이 아닌 2살 터울이면 더 친했겠지?


모든 옷이 축축해지기 1분 전


영화에 나온 차들. 헤이딜러 앱 깔아야겠네.


이것도 치우려면 동사무소 가서 폐기물 스티커 사 와야겠지?


universal Studio 안녕~


미국의 남양주, 비버리힐즈


Not in this life!


핸드폰 찾고 급방긋


얼바인 동권이집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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