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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13일차 - San Diego(1)

2022.07.24.


눈 뜨고 조심스레 컨디션부터 체크했다. 제발~ 로또 번화를 확인하는 심정으로, 내 몸의 부위들을 하나씩 긁어보았다. 삑! 삑! 덴장, 오류 메시지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잔기침이 제법 묵직한 기침으로 변했고, 37.8도에 살짝 근육통, 몸이 쫘악 가라앉는 것이, 이거 높은 확률로 코로나네. 미국도 최근 확진자 다시 늘고 있다는데, 어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마스크 안 쓴 수 천명과 접촉한 결과인가. 아 놔. 지금 코로나 걸리면, 아픈 걸 떠나 여러모로 꼬이는 상황인데. 교회니까 기도하자. '주님, 저를 미국땅에서 버리지 마소서~'


일단 일요일, 교회부터 가자. 혹시 모르니 마스크로 무장하고 말을 줄였다. 내심 영어예배드리는 미국 교회를 가보고 싶었는데, 동권이 누나가 다니기 시작한 근처 조그만 개척 교회로 갔다. 우리 교회와 모든 것이 달라서 낯설었다. 특히 찬양을 정말 오랫동안 서서 불렀는데, 계속 서 있으니 몸이 가냘프게 떨리기 시작하며 의자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냥 나만 앉아버릴까? 이번 찬양이 마지막이겠지? 꾹 참고 버텼다. 그 사이 몸 컨디션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예배가 끝나고 점심을 교회에서 먹었다. 어디서 먹을지 우물쭈물하다가 교회 분들에게 잡혀 버렸다. 심지어 갈비찜과 과일이 푸짐하게 놓여 있는 담임목사님 가족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새로 주재원 발령받아 나온 새 신자 가족으로 보였나 보다. 목사님, 저한테 코로나 옮으시면 얼바인 초토화됩니다. 교회 신도 중 몇몇은 LA로 출퇴근할 테니 LA도 초토화되고, 국제도시 LA에서 전 세계로. 내가 이번 확산의 주역이 되는 건가. 미쳤구나.


햄스터 입 크기로 최대한 작게 벌리고 오물오물 씹었고, 음식 준비한 손길들 빡치지 않을 정도만 먹고 일어났다. 시한폭탄 같은 몸뚱아리로 일단 이곳을 떠야겠다. 샌디에이고로 내려가기 전, 스타벅스나 들러 입을 헹구기로 하고 이동하던 중, 아이들도 교회에서 오물거리기만 했는지 배고프다고 해서, Sand Canyon Plaza에서 팬케익과 우동으로 또 한 번의 식사를 했다. 내 컨디션은 바닥 아래 지하를 향해 계속 나빠졌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식은땀도 났다. 얼굴이 원해 못생겨서 저런 게 아니고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를 챈 동권이가 기습적으로 내 이마에 손을 대더니, “인마 열나네.”로 나의 코로나 의심증상은 공식화되었다. 


난 바로 차로 가서 자가진단키트를 했다. 지영이가 막힌 하수도관도 뚫을 기세로 내 코에 면봉을 쑤셔 넣었는데, 그때마다 지영이의 손을 몇 번이고 잡아채며 제지했다. 이렇게 격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지영이가 모르고 눈까지 찌를 것 같았다. 면봉 주쇼. 내가 직접 했다. 그래도 요령 부리지 않고 양심껏 좌로 우로 깊숙이 넣고 돌렸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검사. 


잠시 후, 진단키트에 떨어뜨린 액상이 종이 색상을 변화시켜 나갔는데 어라, 한 줄이었다. 키트를 믿지 말자, 내 몸의 증세를 믿자. 이건 코로나가 확실하다. 내일 두 줄 뜨겠지. 그러니 코로나 환자라 생각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애들아, 아빠가 너무 좋아 수시로 안기고 싶겠지만, 잠시만 접근하지 말거라.


동권이 부부가 샌디에이고까지 운전을 해준다고 했다. 동권이가 우리 차를 운전하고 제수씨가 차를 가지고 따라와서, 우리 내려주고 다시 올라온다고. 듣기만 해도 '민폐 of the Year'감이었다. 이 부부는 라이드 해준다는 게 진심이었다. 진짜 그럴 준비를 했다. 내가 그 정도로 환자로 보였나. 어허, 편도 2시간 거리인데 그 정도는 내가 하지. 코로나의 증세 중 ‘운전 집중력 저하’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차 두대 움직여서 2시간 라이드 해준다고 해서 고맙네. 몇 대 때리려던 거 봐줄게.


자, 이제 진짜 내려갑니다. 작별은 아니었다. 열흘 후 디즈니랜드 갈 때 동권이네에서 다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샌디에이고에서 잘 회복하고 올게.


LA에서 샌디에이고까지의 길은 예전에 몇 번 가본 길이라 익숙하고 정겨웠다. 운전 30분이 지났을 때부터 살짝 근육통에서 파생된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주먹으로 턱을 툭툭 치면서 버텼다. 앉아서 핸들만 살짝살짝 움직이는 게 뭐가 힘들다고. 정신 차리자.


지난 13일간이 여행이었다면, 샌디에이고에서의 9박은 본격적인 휴양 컨셉이었다. 이번 여행 경비 지출 중 가장 큰 save가 일어난 구간으로, 9박 동안 은영이 누나집에서 묵기로 했다. 은영이 누나는 설명하자면 긴데, 아무런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친누나처럼 평생을 살아왔다. 아버지가 선수 시절, 은영이 누나 아버지가 큰 도움을 주셨고, 너무 고마워 딸만 둘인 그 집에 나를 아들 삼으라고 하셨단다. 공유 차량, 공유 오피스가 등장하기도 전에 공유 아들을 제안하셨다니, 시대를 앞서나간 분들이셨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난 은진이, 은영이 누나를 친누나라 생각하며 지냈고, 초등 시절엔 난 엄마, 아빠가 두 명씩이고 누나들도 서울 살고 있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절 선생님들은 복잡한 사연을 가진 집으로 생각했을 듯. 은영이 누나는 태권도를 했는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최초 2연패로 기네스북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경희대학교 석사과정도 수석으로 입학했고, 잠시 버클리 대학 태권도부 코치로 파견 갔다가 버클리대 학생이었던 매형 frank를 만나서 결혼하고, 미국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드디어 샌디에이고 은영이 누나 집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이 애매하게 알려줘 집 몽타주도 비슷하고, 번지수도 같은 다른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백인 아저씨가 나왔다. 총을 안 가지고 나와서 고맙네. 동네 한 바퀴 돌아 드디어 누나 집 발견. 와, 집 좋다. 누나, 매형, 찬휘와 영휘, 그리고 고양이 씨씨와 삐삐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누나, 너무 반가워 허그부터 해야 하는데, 잠시만. 코로나 검사부터 다시 했다. 지영이가 쑤셨는데, 누나랑 매형이 보고 있어서 이번에는 추하게 지영이 손을 잡아채진 않았다. 이 틈을 타서 지영이가 'to infinite and beyond' 정신으로 진짜 깊숙하게 찌르고 돌렸다. 누나랑 매형도 놀랠 정도로. 면봉이 저렇게 깊숙하게 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이번에도 한 줄 음성. 그래도 누나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니 증세를 이야기하고 당분간 코로나 환자라 생각하고 격리를 하기로 했다. 저녁으로 찬휘가 새우 요리를 해줬고, 비주얼과 맛 모두 미슐렝이었다. 난 성스럽고 고급진 식사 자리에서 비말 분무기처럼 기침을 할까 봐 이번에도 조심조심 오물오물 조그만 먹었다. 난 말도 몇 마디 못 나누고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가 독방 하나를 차지하고 그 방에 격리되었다. 


20년 만의 샌디에이고, 몸은 아팠지만 느낌 너무 좋다.

9일 간 잘해보자.



은영이 누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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