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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22일차 - Disneyland

2022.08.02.


오늘은 아이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대학 축제로 치면 싸이와 동급인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디즈니랜드에 가는 날이다. 아침마다 깨우는 것이 전쟁인 아이들도 "지금 안 일어나면 디즈니랜드 줄 엄청 서야 된다"는 속삭임에 벌떡 일어났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은영이 누나 가족과 작별 허그를 하고 새벽 6시 20분에 출발했다. 이 정도면 전시의 군인들처럼 각 잡고 재빠르게 움직인 거지. 누나 집 안녕~


디즈니랜드까지 내비게이션 상 한 시간 반 걸린다고 나왔는데, 정확히 그 시간에 도착했다. 이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이 기계는 어쩌면 이렇게 정확할까. 내가 몇 km로 달릴지, 중간에 주유를 할지 응가를 할지, 어떻게 예측하고 이토록 정확할까, 볼 때마다 경외감이 든다. 


디즈니랜드는 오늘 하루에 끝장을 내야 해서, 늦은 밤까지 강행군이 예상된다. 아이들만 즐겁다면 고관절이 나갈 때까지 계속 걸어 주리라. 


가장 먼저 몬스터 주식회사로 출근하여 가벼운 열차 하나를 탔다. 안전벨트도 필요 없을 초등용 탈 것이었지만, 퀄리티 쩌는 몬스터 캐릭터들로 눈은 충분히 즐거웠다. 굿 스타트. 그다음으로 줄이 짧아서 아무 곳이나 가서 탑승을 하고 보니 3D였다. 40대 신경세포들의 킬러 또 만났네. 지영이랑 나랑 또 만취한 사람들처럼 비틀거렸다. 어쩜 좋지, 이제 초반인데.


워밍업 두 개를 끝내고, 아이들이 가장 타고 싶어 하던 원 픽, CAR를 타러 갔다. 한 시간 정도 예상되었는데, 중간에 기계 고장이라며 미안하다는 메시지만 계속 흘러나왔다. 안쪽에 줄이 얼마나 긴지 가늠할 수 없는 구조라 무작정 기다렸는데, 결국 3시간을 기다려 탈 수 있었다. 글 쓰다 보니 또 빡치네. 3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 도착해서 돼지국밥 한 그릇 먹는 시간인데. 대학 때 수강신청한다고 전산실 앞에서 몇 시간 줄을 섰던 이후, 내 인생 줄 서서 가장 오래 기다린 것 같다. 그래도 CAR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이 롯데월드, 유니버셜 스튜디오까지 통틀어서도 가장 재밌었다고 했다. 난 용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해도, 세 시간 기다리는 건 참을 수 없지만, 애들만 좋으면 됐지.


다음 장소로 이동 중에 흑인 4인조 아카펠라 그룹이 알록달록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노래를 부른다. 소울 충만한 버스킹은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디즈니랜드의 보이즈 투맨이네. 이 친구들 아메리카 갓 탤런트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아이들은 이미 저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보이즈 투맨 안 봐?


본격적으로 푹푹 찌기 시작했다. 이런 더위엔 중간중간 당을 보충해줘야 한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지영이는 아이스커피를 사 왔고, 난 이들을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버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아버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다시 행군을 나섰는데, 이번엔 토이스토리 초록색 병사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었다. 난 이게 왜 이렇게 신선하지? 이 더운 날, 군복 입고 온몸에 초록색 물감을 칠하고 북 치고, 춤추고, 참 고생이 많네. 이력서엔 Disney에서 인턴 한 걸로 적히길.


그 시간, 드디어 지영이가 디즈니랜드 앱을 마스터했다. 우리가 끊었던 지니+ 표는 앱을 통해 사전 예약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LIGHTNING LANE을 통해 기다리지 않고 빨리 갈 수 있는데, 프리챌~싸이월드 이후 성장이 멈춘 IT 능력 덕분에 활용을 못하고 있었다. 회전그네를 기다리다가 앱을 마스터하여, 우린 후다닥 Lightning Lane으로 옮겼다. 오, 몇 분을 아낀 거야. 


아직 3D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은 지영이는 그늘에서 쉬고, 우리 셋이 회전그네를 탔다. 몇 바퀴 회전하더니 멈춰 섰다. 기계 문제가 아니고, 함께 음악이 나와야 하는데 음악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그 덕에 우린 1.5번을 탈 수 있었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그네 정도야 안전벨트 끊어져도 탈 수 있지.


그런데 아이들에겐 이 기구가 제법 어지러웠나 보다. 세대별로 데미지가 다른 곳에서 오네. 고맙게도 아이들이 급 피로감을 호소해서, 근처 카페로 옮겼다. 지우는 잠시 누워 있더니 잠이 들었다. 그래, 이런 일정에서 쪽잠은 인삼 한 뿌리 씹어 먹는 것 같은 효과가 있지. 학창 시절엔 쉬는 시간 종 치자마자 엎드려 10분간 자면, 한 사람의 일생이 펼쳐 지나가는 대서사 꿈도 꾸곤 했는데. 지아도 언니 옆에 포개지더니 잠들었다. “저기요, 우리 애들 자니까 불 좀 꺼 주실래요? 음악도 끄고?” 물론,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속으로만 외쳤다. 알바가 총을 꺼낼 수도 있고.


에버랜드의 젖고 젖는 아마존 익스프레스와 흡사한 기구를 탔다. 여기부터는 LIGHTNING LANE으로 크게 기다리지 않고 탑승할 수 있었다. 제법 익사이팅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젖었다. 지아와 지영이의 옷은 갈아입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흠뻑 다 젖었다. 뭘 갈아입어. 땡볕에 걷다 보면 곧 마르겠지. 


다음 탈 것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지우와 지아가 무려 어깨동무를 하고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낄낄 웃으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 이런 장면이 왜 이렇게 심쿵한 걸까. 평소에도 이렇게 붙어 다니면 안 되겠니. 아빠 눈에서 또 꿀 떨어진다.


그다음은 1도 기다리지 않고 트럭을 탔다. 별 거 아니라 생각하고 탔더니, 디즈니에 별 거는 없었다. 나름 익사이팅했다. 에라 모르겠다, 고함을 꽥꽥 지르면서 탔더니, 아이들은 그 소리 때문에 무서웠다고 했다. 역시 공포 영화엔 음향 효과가 있어야지.


계속 잔잔바리들의 연속이었다. 인어공주를 만나러 조개도 탔다. 세트장도 아기자기하고, 디테일도 살아있고, 피가 쏠리는 급격한 이동도 없고, 투어 버스처럼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니, 이제 이런 평화가 좋네.


밤 9시까지 머물렀으니, 13시간 풀로 있었다. 말 그대로 불살랐다. 너희들도 나중에 40 중반이 되어 아이 데리고 와서 풀타임 있어 보길. 그때 아빠 엄마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게 될 거야. 


오늘은 얼바인의 동건이 누나 집에서 자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가려 했는데, 9시가 넘으니 대부분 영업시간이 종료한 후였다. 디즈니랜드 안에서 뭐 라도 먹고 나올걸. 이렇게 늦은 시간에 가는데, 저녁도 안 먹고 왔다면 얼마나 민폐일까. 동권이 누나 스타일 상, 상다리 부러지게 준비해 주실 텐데. 그래서 미리 연락을 드려서 아이들이 라면 먹고 싶어 하니, 들어가서 우리가 라면 끓여 먹겠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니 동권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후루룩 후루룩 면치기 좀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11시가 다 돼간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길고 빡센 하루가 끝났다. 동권이 누나가 편히 쉬라며 안방을 내어 주셨다. 아, SUV에서 차박도 할 수 있는데 안방이라니, 너무 황송한데. 감사합니다. 


드디어 디즈니랜드 숙제 끝났다. 오늘은 깊이 잘 수 있겠다.



disneyland 도착


가슴이 웅장해지는 자매의 어깨동무


3시간 넘게 기다린 CAR


오래간만에 부부샷


쫄지 않는 아빠의 위엄


디즈니랜드의 보이즈투맨


초록 병사들. 보이즈투맨이 두 탕 뛰는 건 아니겠지.


당 보충하며 다음 일정 계획


회전 그네


휴식 중


디즈니랜드 안녕~


하루 신세 진 동권이 누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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