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 그 후 1년, 다시 돌아온 유럽
여행 31일째, 그만 울고 말았다.
나는 더위에 약하다. 내 몸안에 가진 열정이 많아서 그런지. 더운 날은 불을 만난 것처럼 내 몸안에 있는 장기들이 열을 낸다. 하나씩 고장 나고, 끓고, 숨을 쉬지 못한다. 오뉴월에 개도 안 걸리는 감기가 걸렸다.
오늘 파리의 온도는 무려 37도였고, 체감온도는 40도가 넘었다. 그 와중에 나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친구들과 다녀왔다. 사실 이번 파리에서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딱히 어떤 계획도 없었기에 일정이 없는 날엔 함께 하는 친구들 스케줄에 맞춰 동선을 짜서 그들을 신경 써야 하고, (물론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 그것까지 신경 써야 했다. 물리적인 짐만이 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튈르리 공원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다시 한번 다짐한 것을 아래에 나열해 보겠다.
1. 지나간 인연 그리고 떠나간 인연을 놓을 줄 아는 법. 오는 사람 따뜻하게 환영하고요. 가는 사람 잘 가고요.
2. 책임질 수 있는 일만 하는 법
3. 욕심을 자제하기 여러 가지로. 우선순위 세 가지를 두고 그것에 집중할 것.
4. 혼자만의 시간은 충분히 가질 것
5. 쉼의 중요성
6.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는 없는 법
7. 아무리 의도가 좋았어도, 상황과 마주한 현실이 타협이 되지 않는 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기에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만, 이미 엎어진 물이라면 마무리를 잘 짓는 것 또한 중요하다.
8.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9. 각자의 사정, 결국엔 중요한 것은 지사정.
10. 내가 온전히 나 다울수 있도록 행동할 것. 단, 우하하게
등이 있다. 앞으로의 내 일상에서도 아마 크게 영향을 끼칠 열 가지다.
그리고 오늘은 동행친구들이 한 가지씩 문제가 있었다. 막바지엔 내가 힘이 다 빠져서, 그만 울고 말았다. 여행을 할 때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데 나의 울음 포인트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 그리고 지독한 더위에 쌓인 짜증이 어떤 큰 위기에 직면하면 터져버린다. 그 와중에도 여행하며 길러온 위기 대처 능력이 있기에 금방 회복하기도 하지만.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내 화를 내가 참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을 내가 컨트롤하지 못할 때 나는 속상하다. 내 안에 있는 기쁨, 슬픔,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마주할 때는 나름대로 그 감정을 즐기는 편이기는 하나, 분노와 화, 짜증이라는 감정을 마주할 때는 내가 너무나 미숙해 보인다.
오늘도 내 화를 참지 못해 울어버렸다. 작년엔 밀라노에서 40분을 울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쌓인 화를 터뜨리고 스위스로 넘어가며 잘 삭히고 다스렸다. 이번 여행에서도 한 번쯤 울 줄 알았으나, 그게 파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번 파리에서의 불씨는 울음이 되어 터졌으니,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잔잔한 흐름만이 기대된다.
여행 한지 딱 한 달이 되었고, 귀국하기까지 딱 한 달이 남았다. 그러니까 오늘이 절정인 부분이 맞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뜨거운 태양 아래 파리는 아름다우며, 나는 청춘이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거면 됐지 싶다.
오늘 마지막 에펠탑을 보면서 다음 에펠탑을 상상해봤지만, 이제는 그 미래가 뚜렷하지 않아 보였다. 워홀 할 때는 매년 파리에 오겠다고 다짐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뚜렷하지 않다고 해서 두렵거나 슬픈 감정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언제 올지 모르는 것이지. 여러 번의 여행을 하며 이별에도 익숙해지고 무뎌지나 보다. 앞으로도 인연이면 마주하겠거니 하고 말이다. 아마도 지금 내 옆 인연에 최선을 다해 그럴 수 있나 보다. 열가지 다짐 중에 쓴 것처럼, 오는 사람 따뜻하게 환영할 것이며, 가는 사람 잘 가시게나! 여행처럼-!
19년 7월 24일 수요일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는
프랑스 파리 마지막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