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수업 녹화가 있어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 갔다. 서울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티타워 건물 15층에 이제 막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고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전을 축하합니다" 리본을 매단 화분들이 초록잎을 흔들며 인사했다. 친절하고 스스럼없이 환대해주는 직원분들과 밝고 산뜻한 내부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 층을 모두 쓰고 직원분들이 40명 정도 된다고 해서 처음엔 규모가 크다는 느낌이었는데 천만명 서울 시민의 정신건강 최전선인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상시 전화상담을 운영해서 상담실 옆에는 작은 수면실도 있었다. 삶과 죽음의 극단적 갈림길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중압감으로부터 상담사분들은 자신의 돌봄을 어떻게 지키시는지 염려됐다. 자살 유가족을 위한 상담실 앞에서는 마음이 찡하게 아팠다. 황망하게 가족을 잃은 남겨진 이들의 상처는 얼마나 클지 상상만 해도 슬펐다. 유가족 상담실의 코랄빛 벽지와 둥근 조명은 신경생리학적으로 배려된 인테리어일 거라고 혼자 추측했다.
녹화를 마치고 배웅해주는 직원분들께 뿌듯한 일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사회복지 업무나 상담하는 분들께 헌신이나 숭고함을 표현하면 그분들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았다. 나를 위해 하는 일인데 남을 돕게 되면 금상첨화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곳곳을 사진 찍어 SNS에 남기고 싶었다가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들 사이에서 사진 찍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접었다.
촬영 카메라 앞에 선 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왜 저렇게 눈을 시도 때도 없이 깜박거리는지 눈에 경련이 일어난 것 같았다. 머리카락은 또 왜 자꾸 얼굴을 찌르며 간지럽게 하는지 나중엔 헛웃음이 나왔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 시선 처리하는 연습을 하는 게 분명하다. 녹화하며 지킨 한 가지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려고 꾸미지 않은 것이다.
"입과 머리로만 살자니 인생살이 가벼운 것 같고 손발로 살자니 미련한 삶과 같아 시원찮다"는 시인처럼 머리와 가슴이 충돌하고 손발이 맞지 않을 때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겠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길을 가면 어른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