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에서 성균관까지

by 윤재훈

혜화동에서 성균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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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학로 따라 혜화동을 거쳐 조선최고의 국립대학 <성균관>까지 걷기에 나섰다. 며칠째 우리를 괴롭히던 황사가 말끔히 사라지고 걱정했던 추위까지 눈에 띠게 누그려져 일행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보인다.

먼저 우리는 <혜화동 성당>으로 갈 것이다. 한성대입구역으로 나오면 바로 지척이다. 오른쪽 길 건너편으로 혜화문이 보인다. 오늘 우리가 이 성당을 찾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이곳이 우리 근대 역사가 서린 서울의 3대 성당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당의 역사를 알려면 이 땅에 한창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개항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86년 한불수교가 체결됨으로서 천주교 박해가 끝나고 비로소 이 땅에도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서양을 배워야한다는 캐치플레이 아래 이미 1868년 메이지(명치明治) 유신을 단행하여, 쇄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던 도꾸가와 막부를 해체하고 천왕중심 중앙집권체제로 회귀했다. 이렇듯 일본은 나라의 문을 활짝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맞아들이기에 분주했는데, 조선은 대원군의 집정 아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그리고 명성황후와 서로 일본과 청나라의 외세를 끓어 들이기에 바빴다.

일본은 이런 조선에 군함과 총으로 무장하고 강화도로 밀려들어와 해안선을 측량한다는 명분으로 운요호(운양호) 사건을 일으키고 그것을 빌미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된다. 또한 양인들도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일으키며 무자비하게 조선으로 진입한다. 그때의 침략의 흔적은 지금도 강화도 돈대에 생생하게 남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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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교정 입구


우리나라 3대 성당을 꼽으라면 <서울의 명동성당과 전주의 전동 성당, 대구 계산 성당>이다. 여기에 서울의 3대 성당을 들라면 약현 본당(중림동 성당, 1893년), 종현 본당(명동성당 1898년), 백동(혜화, 1927.4.29) 본당이다. 그중에 가장 오래된 성당은 약현 성당이다. 사실 기초를 먼저 닦은 것은 명동 성당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약현 성당이 먼저 건축이 되었다. 그 시절 도성 내 사목은 명동 성당에서 맞고 도성 밖은 약현 성당이 맡아 현재 서울대교구 내 본당 대부분은 명동성당이 아닌 약현성당에서 갈라져 나온 본당들이다.

나는 이곳에 오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몇 년 전인가 지인의 안내로 동신 고등학교 옆에 있던 수도원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곳으로 산보 나오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다 잠깐 동안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입적하셨다. 바보라는 이명(異名)이 붙으신 분, 나는 두고두고 그분과의 짧은 만남을 추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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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갈 혜화동 성당은 서울에 세워진 3번째로 탄생한 본당이며 대한민국 서울에서 첫 번째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 제230호(2006.3월 지정)이다.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관의 설계자이기도 한 건축가 이희태 요한(1925~1981)이 설계 했으며 국내파 건축가로 기존 성당의 개념을 거부하고 개성을 살려나간 독창적인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철저하게 독자적이고 비주류적인 건축인생을 살았으며 그의 소신이 녹아있는 본당의 모습은 단순명료하다. 여기에 기하학적인 형태와 비대칭의 입면구성 등 기존 성당건축의 정형화된 틀을 깬 독자적 양식으로, 1960대 이후 교회 건축의 한 모델이 되고 있다. 특히 당시 한국 성당의 고딕양식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던 붉은 벽돌(김수근 건축가 많이 사용, 아르떼미술관, 경성제대 본관 서울대 병원 등)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모더니즘 건축기법을 도입한 근대적인 건축의 모습을 띤다.

계단 위에 올려진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단순한 상자형으로 지어졌고 내부는 기둥이 없는 장방형 평면의 강당형 공간을 이루고 있다. 전면 현관 위 ‘최후의 심판도’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요한복음서)”와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루카복음서)”는 성경 구절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4명의 복음서 저자 상징이 좌우에 있다. 화강암 부조로 1961년 김세중 프란치스코 서울대 교수가 원도를 완성하고 장기은 교수와 함께 조각한 부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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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103인의 순교성인화,1977>년 작이다. 이것은 문학진 토마스 화백이 10개월 동아 전례, 역사, 복식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한국적 주체성을 살려 한 분 한 분의 표정을 밀도 있게 표현해 낸 작품이라고 한다. 시대와 신분이 다른 순교자들이 기쁨에 찬 모습으로 천국으로의 귀환을 기다리는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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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규 루카 교수가 1980년과 1989년에 걸쳐 제작한 유리창에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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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상 요셉 화백이 1994년 제작한 <부활 성수대> 위에 임영선 교수가 예수 부활상을 얻은 합작품으로 상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관을 쓴 채 못 자국이 선명한 두 손을 포개고 있다. 오랜만에 멋진 작품들을 감상하고 마당으로 나오니 아담한 찻집이 있어 우리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혜화동 로타리 건너편에 3대째 운영되고 있다는 동양서림이 보인다. 혜화동과 대학로 일대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지만 한 블럭만 안으로 들어가면 옛시절의 풍경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 하루에 다 구경하기에는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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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골목길을 따라 이 땅에 유일하게 한옥으로 지은 <혜화동 동사무소>을 찾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 193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인 한소제씨가 지은 한옥으로 2006년 리모델링을 통해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동사무소로 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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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후원을 본 뜬 벽의 문양들도 푸근하다. 입구에는 찻집이 있으며 안에도 한옥 스타일로 지어져 생소하게 다가온다. 여느 동사무소처럼 동민들이 찾아와 필요한 서류들을 떼고 있었다. 뒤란으로 돌아가니 한옥의 전채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으면 외부로 좁다란 복도가 약간 있고 그 위에 작은 돌짐승 조각까지 놓여있다. 특히 자그마한 마당에는 소나무가 서 있으며 그 아래 의자가 놓여있어 여름날 도심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기에는 안성마춤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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