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화 Oct 12. 2020

대구에 사시는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안전모가 내게 특별해진 이유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고마웠는지~"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특별하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처음은 가슴이 콩닥거리는 감동이다. 기다려지는 설렘이며,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된다.


 쇼핑몰을 개설하고 얼마지 않아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주문 알림이 들어왔다. 남편이랑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꺅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오빠! 주문이 들어왔어!"

 "응? 무슨 소리야?"

 "내가 팔았다고! 내가 팔았다고! 내가 내가... 안전모를 팔았... 다.. 네?!"



 쇼핑몰을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나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것,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할까 말까를 망설이게 되는 것이 '대량 등록'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도매사이트(제품을 도매가로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상품의 정보를 엑셀 파일 등으로 내려받아 내 쇼핑몰에 한꺼번에 등록하는 서비스이다. 요즘에는 파일로 직접 등록하지 않고 별도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자동으로 연동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들도 활성화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라고 생각했을 때, 오프라인 가게에서 물건을 진열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 쇼핑몰에 물건의 사진과 설명, 가격을 등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개, 100개의 상품이 등록되어 있을 때 매일 1개 정도의 상품이 팔린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운영하는 쇼핑몰에 수천 개, 수만 개의 상품이 등록되어 있다면 어림잡아 10배, 100배의 상품이 판매되지 않을까. 이런 정도의 수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쇼핑몰 사장님들이 대량 등록을 두고 수많은 밤을 고민으로 지새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워낙 많은 수의 상품들이 등록되는 작업이므로 개별 상품에 대해 별도의 설정을 할 수는 없다. 도매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사진과 설명을 그대로 사용하여야 하며, 가격도 정해진 도매가에 몇 % 의 마진을 붙여서 판매할 것인지만 설정할 수 있다. 제품이 속해있는 카테고리 정도만 설정하면 해당 카테고리 내의 상품이 주르륵 자동으로 등록되는 시스템이다.


 그렇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초보 쇼핑몰 사장이었다. 대량 등록의 유혹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원래 판매하고자 계획했던 찻잔과 티포트가 포함된 주방용품은 상품수가 적어 생활용품까지 범위를 확대해서 카테고리 설정을 마쳤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그럴싸한 변명은 있었다. 어떤 상품이 팔릴지 모르니, 고객들이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모르니 대량 등록을 통해서 쇼핑몰 운영의 감을 익히는 것이 좋겠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 아니 엄청나게 얕은 곳에서부터 좀 더 쉽고, 편하게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젠 숨기지 않으련다. 그냥 버는 것도 아니고 많이 벌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나도 욕심 많은 인간이었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이름.

 나의 첫 고객은 대구 수성구에 사는 분이었는데, 내가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안전모를 3개 구매하셨다. 정확한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그 고객의 성까지는 또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그날 나는 매우 흥분해 있었다.


 사실 내가 놀라워했던 사실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내가 안전모를 판매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안전모가 내가 보기에도 별로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안전모는 상당히 저렴하기까지 했다. 도매사이트에 고객이 주문한 정보를 입력하여 배송신청을 하면서 나는 무언가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니즈가 있으니 맞고 틀림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내가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이렇게 무지해도 되는가에 대해 나의 고민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뒤로도 나는 유성매직도 한 박스 팔고, 스케치북 다발도 팔고, 작은 깔때기와 큰 깔때기 세트도 팔았다. 모두 내 쇼핑몰에서 실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었고, 나는 고객의 주문이 접수된 이후 그 제품들의 존재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들의 사진도, 그것들의 가격도 내게는 생소했고 낯설었다. 하지만 분명 내 쇼핑몰에 지금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는 상품임은 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안전모의 추억을 소중히 가슴속에 묻으며 대량 등록 서비스를 해지 신청했다. 수많은 상품을 내 쇼핑몰에서 지워내는 것만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잘 지워졌는지 확인하고 정리하는데도 품이 들었다. 하지만 적게 팔더라도 내가 팔고 있는 것들을 온전히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또한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이 자리를 빌려 대구에 사시는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덕분에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것을 개시하고, 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공간이 아닌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결심도 결국 그 3개의 안전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안전모는 지금쯤 잘 쓰이고 있을는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내 첫 판매의 추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에 고요가 찾아오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